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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Oct 07. 2023

넌 프라다, 난 악마

김신영 시인

<넌 프라다, 난 악마>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간다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 속담에


한 드럼의 설탕에 꿀까지 아귀 발라

쓴맛을 내는 옹벽에 먹칠하듯 마구 칠한다


쓴 벽을 달콤하게 만들어 놓는다 한들

그래도 벽은 벽이지     


정말, 섭섭하지만 내가 천국에 갈 리는 없고

지금, 저 옹벽이 무너질 리도 없고

어디든 가는 나쁜 존재도 못되나니    

 

짝퉁 럭셔리 핸드백을 해진 바랑 삼아

새빨간 악마, 거리의 바람별이 되지

미욱한 칼로 바람을 써는 일이지     


어떻든

어딘가 가게 되겠지


네가 프라다를 입고 티파니를 걷든

지방시를 입고 로마를 걷든

샤넬로 거기서 아침을 맞이하든

몽클레어로 눈밭을 구르든      


나는 성탄 저녁이 스콜처럼 몰려오는

측은하고 외롭고 쓸쓸한

우리네 나쁜 인생을 구원하러

구멍 난 낭만 꾸러미를 어깨에 걸친 것이지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머리를 욱여넣고

이해력이 넓은 척 멋지게 웃어주는

코 먹은 말씨의 친절한 남자를 만나


프레타 포르테*에서 오트 쿠튀르**를 골라잡는

뿔 달린 악마를 고르는 일

그것만은 생각보다 쉬우니     


어디를 가든 나쁜 사람아

새빨간 악마를 입은 사람아    

겨우내 벼린 칼날로 바람을 써는 사람아


 * 기성복 박람회,  **맞춤옷 협동조합 의류     


시와함께 2023.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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