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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Nov 20. 2023

개명의 변

한 인간의 가치를 아는 것은 그의 말과 행동과 글을 통해서이다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개명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일 것이다. 내 경우에는 너무나 동명이 많았다. 변별력을 갖기 위해 필명을 가졌으며 그 후 필명을 본명으로 개명하였다. 


1. 등단하면서부터 필명을 사용하였다.

국립 중앙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이름을 검색대에서 검색하고 도서카드를 살폈다. 3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 본래의 내 이름이 김영옥인데 앞집 뒷집 옆집에 영옥이가 살았다. 이영옥 김영옥 박영옥 심지어 출석을 부르면 내이름인지 갈리는 김영호도 있었다. 이에 등단하려니 변별력이 없는 이름이라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동명은 곤란하다 생각했다.

드디어 94년 7월 초에 등단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신영이라는 이름이다. 이 이름이라면 문인중에 누구도 없어 만족하였다. 그러나... 5년쯤 뒤에 개그우먼, 그는 키가 작고 뚱뚱했다. 그 이름이 인터넷을 도배했다. 이를 어쩌나... 이미 어쩔 수가 없다. 벌써 책도 나와버린 상황이니.


2. 첫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은 등단후 2년만인 96년 4월에, 그것도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필명이라 말하였으나 위대한 출판사는 어떤 이의도 재기하지 않았다. 문단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니까. 그때에 종로오가에 근무하던 나는 퇴근하면 새로 생긴 영풍문고로 달려 갔고 종로오가에서 종로일가까지 30분이 걸렸으나 이를 마다하지 않고 영풍문고에 전시된 시집을 몽땅 읽었다. 더불어서 교보문고까지 가서 역시 시집을 몽땅 읽었다. 그때는 사각의 벽면 하나가 모두 시집이었다. 시집이 대세인 시대였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내 시집은 문학과지성사와 어울린다는 엉뚱한 몰입에 이르러 두번의 투고 끝에 내 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문지는 시집 통보를 받고도 3-4년은 족히 기다리는 것이 예사 였다. 나는 95년도 9월초에 통보를 받고 이듬해 96년 4월에 출간하였으니 어지간히 일찍 나온 것에 해당한다. 김주연 선생님(한국문단의 4k로 통하는, 김현 김주연 김병익 김치수)께서 시해설을 기꺼이 써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께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일로 내내 깊은 감사를 드린다. 김주연 선생님은 숙명여대 명예교수님으로 한국문학 번역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한국문학의 번역에 이바지 하였다.


3. 문지에서 시집을 낸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얻었으나 문단의 행태에 실망한 나머지 나는 모든 활동을 접고 칩거에 들어갔다. 때마침 결혼도 하게 되었으며 출산과 육아도 시작되었다. 또한 학업도 지속하였다. 이에 임신 9개월차에도 석사과정을 진행하여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걸을 수 없을 만큼 만삭인 배를 안고 학교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렸으니 지금 생각해도 가상하다.

아기는 학기가 한창인 10월 30일에 3.84kg으로 제법 크고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 녀석이 해병대에 다녀온 후 취업 준비중이다. 아무튼 그렇게 칩거의 세월이 길었다. 활동을 하는지 마는지 시를 쓰는지 마는지 시간이 흘러갔다. 간간이 시집을 내었다.


4. 박사학위를 중앙대에서 2007년에 받았다. 당연히 본명이 적혔다. 이에 어떤 사람들은 간혹 묻는다. 무얼로 논문을 쓰셨어요? <현대 여성시의 상징연구>라 하면 아, 그분이요? 하고 자기가 내 본명을 댄다. 박사 학위는 쉽지 않았다. 죽을 뻔하기도 하고-극도의 스트레스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놓지 않고 이루어낸 불굴의 의지로 받은 학위다. 


5. 그리하여 필명인 김신영으로 살아가는 일이 고달프기도 하여 오래 사용한 필명을 본명으로 개명하였다. 2017년의 일이다.


6. 또 가끔 중앙대의 선배나 후배를 만난다. 박사라 하면 논문이 뭐냐 지도교수는 누구냐 묻는다. 사실 논문보다 문제인 것이 지도교수 였다. 당시 성추문으로 징계를 받고 복귀한 교수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를 밝히는 것이 껄끄러워 되도록 학교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7. 또한, 논문의 경우 네이버에 한동안 박사수료라고 뜨기도 하였다. 내 생각에 박사는 학위논문이 있기에 굳이 내가 이를 네이버에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취직시켜주는 것도 아닌데 논문이면 되었지 왜 증명해야 하느냐며 항의하다가 내버려 두었다. 그랬더니 내가 참여하여 수정한것처럼 '박사수료'를 떡허니 올려 놓았다. 그래도 논문이 있으니 내버려 두었다. 이를 두고 시비를 거는자가 있어 하도 시끄러워서 하는 수 없이 최근에 네이버에 박사학위증을 보내 증명하여 고쳤다.


8. 대부분 네이버의 자료나 정보로 인물검색정보로 이용하고 있어 또 어디에 잘못된 정보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진 등단식 풍경:힐튼호텔 그랜드볼륨. 1994년 동서문학

문청시절 서울대 오세영 교수님과 중앙대 감태준교수님과 문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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