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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Dec 22. 2023

생리 인간의 슬픔, 새해에는 하얀 피를 흘리기를

 차라리 군대 몇년 갔다 오는 게 낫지 1년의 25%를 영혼없이..

외계인처럼 달마다 일주일씩이나 아무도 모르게,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진하고 붉고 무거운 피를 흘려야 하는 현실,

아무도 모르게 숨어 들어야 한다. 한달의 1주, 일년이면 12주, 365일의 84일을 영혼없이 살아야 한다.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이 사실을 주변 사람들까지 알게 해서는 안된다.

'생리중이야' 라는 말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동반하고

 '그게 뭐 대수야'

'그래서'

하며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생리둘째날이 최악이다. 너무 힘들다

몸은 축축하고 처진다. 몸이 무겁고 몹시 뜨겁다


피를 흘린다는 사실은 침대에 알려서도 안된다

그저 혼자 이 모든 상황을 종결시켜야 한다.

깊은 밤이다. 날개달린 야간용 생리대를 팬티에 꼼꼼히 붙인다.

혹시 침대가 알게 될지도 모르는 피의 부끄러움을 깊이 생각하며,

절대 새어 나가지 않게, 몇가닥의 음모라도 뜯기지 않게

평생을 흘려야 하는 피

가장 신체가 왕성한 시기에 한달에 길게 일주일씩

피를 흘리는 인간


유산으로 피를 흘리고

임신으로 피를 흘리고

출산으로 피를 흘리고


배가 너무 아프다. 어떤 날은 기절하기도 한다

뒹굴다가 뒹굴다가 너무 아파 기절을 한다

때로 눈물을 흘리다 잠이 들고

그저 견뎌야만 하는 현실이다. 약도 듣지 않는다. 기절해서 병원에 실려가고 링겔을 맞으며

시간이 가기만 기다린다. 고통스럽다


차라리 몇년 군대에서 지내는 게 낫지.

평생 가장 왕성한 시간을 이렇게 지내야 하다니...

12주면 1년의  25%다. 25%의 시간이 불안과 수치와 수고로움으로 대치되어 지내야 하다니.


한달에 일주일은 피묻은 바지와 속옷을 남몰래 빨아야 한다

누구에게라도 보이면 안된다

피를 흘리는 더러운 상황을 알려서도 안된다.

일주일은 화장실을 수도없이 들락거려야 한다.

바지의 뒤를 확인해야 한다.


혹시 피를 흘린 것은 아닐까

자주 돌아보고 안절부절 앉아서도 힘들다


둘째날에는 양이 많아 바지에 자주 피를 묻혔다

흥건해진 피가 계속 흘러 생리대를 갈아도 끊임없이 피가 흘렀다.

윗도리를 벗어 엉덩이를 가리고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자리가 있어도 앉을 수가 없다. 피가 샐까 노심초사하며 불안을 삭히며 간다.


이것이 생리인간의 길, 하얀 피를 흘렸다는 이차돈은 성스러운데

이렇게 흘리는 피가 모두 성스러운데도 더러움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꽁꽁 싸매고 꽁꽁 숨기고 또 새해를 맞는다

내년에는 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할까


이 생리인간이

영화에서, TV에서는 반라로 나온다.ㅠ

그들의 처절한 고통이 피부로 다가온다.

아니 생리 인간의 삶에 마음이 아리다


새해에는 하얀 피를 흘릴 수 있기를

새해에는 생리 인간이 무시당하거나 멸시당하지 않기를..


오늘도, 한 생리 인간이 뒹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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