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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Feb 06. 2024

아버지는 끝끝내 내 이름을 족보에 올리지 않았지만

그의 족보 대하록은 위대한 조상이 수두룩하다. 다만, 여자는 없다.

2023년 5월에 아버지는 유명을 달리했다. 팔 순이 넘도록 애쓴 족보 대하록은 완성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위대한 족보에는 내 이름이 없다. 딸들의 이름이 없다. 첫째 딸, 첫째 여식... 오히려 이혼한 남편의 이름은 올라가 있다. 남존여비의 철저한 실천주의자, 가부장제의 위대한 인식. 그것이 아버지의 삶이다.


그의 족보대하록은 위대한 조상이 수두룩하다. 다만, 여자는 없다.

나도 없다. 나의 이름은 첫째 여식이다. 선산김 씨 양양공파 33대손 김현종의 첫째 여식.


그는 생전에 내가 남자였다면 좋았을 거라고 여러번 말했다. 내가 남자였다면 더 성공했을 거라는 말과 남자였다면 집안의 대들보였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간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 중앙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으며, 신춘문예보다 100배나 어렵다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시집을 내었으며, 문학상을 받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출가외인인 여식의 일일 뿐, 족보에는 기록할 수가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몇 번을 언성을 높여서 족보에 왜 올릴 수 없는지 물었으나 대답을 회피했다. 나름 이유는 댈 수 없지만 자신이 손수 여식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힘들었나 보다. 끝끝내 아버지의 족보에는 내 이름 석자가 올라가지 못했다. 내 이름은 족보에 없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족보에서는 정체성을 찾을 수가 없다. 그 힘들다는 출산의 고통, 그보다 백배는 힘든 육아를 하며, 박사학위를 받고 글을 쓰고,  시대의 지성을 어필하면서 또 강단에서 살았으나 내 흔적은 없다.


그는 내 아버지다. 나를 늘 존중하고 칭찬하던 사람이다. 그 내 아버지가 이럴 진데 진부한 사회야 두말할 것도 없다. 요즘 종종 여식의 이름을 올리는 집이 늘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먼길이다. 아직도 첩첩산중 이다. 더구나 어머니쪽 족보는 존재조차 찾기 힘들다.


                                     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3, 템페라화, 83.5 ×66㎝, 국립미술관, 오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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