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와문화 이 시인을 주목한다
-김신영 특집

by 휘루 김신영

■해설 이 시인을 주목한다

사물 뒤에 가려진 시대의 풍경을 읽다/박상태

-김신영의 시세계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너무나 거대해서 작은 몸집의 인간이 대적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일은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사회적 공유를 위해서 존재하지만, 거대한 자본을 거머쥔 세력들에게는 약자들을 동원하여 거대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들 거대한 자본은 필시 거대한 권력과 손을 잡고 있으며, 요즈음은 보이지 않는 권력은 국경을 넘어 전 지구촌에 걸쳐 있는 경우가 흔하다. 젊은 친구들이 큰 규모로 참여하고 있는 비트코인만 하더라도 최근에는 이념을 넘어 세계적 경제 상황과 전쟁 등의 요인으로 국경을 넘어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어떤 이는 이를 가리켜 ‘가상국가’라는 개념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김신영의 특집 시들을 읽어가면서 한 시인이 거대한 집단 속에서, 바른 정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실감하게 된다. 아니 바른 정신을 견지하며 살아가는 시 정신의 깊이와 넓이는 좀처럼 대적할 자가 없다는 것을 전율하듯 느끼게 된다.


무엇이 공방 앞에서 천년을 불사르게 하는지

내내 생각해 보아도 이 사로잠은 만 첩 어여쁜 나비 날개를

처참하게 내려앉은 너의 어깻죽지에 멋지고 아름답게 매달아 주는 일


흐린 기억에 햇살을 넣어주는 일이라고

어머니 백옥伯玉에 대고 천천히 말합니다


괜·찮·아·요 어머니, 이 일은 예·술·이·예·요

예술도 가끔 돈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잖아요

괜찮아요. 이젠 물구슬 찍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즘은 를리외르도 밥은 먹고 다니거든요


예술 제본은 천 개의 진흙 알알이 벽돌집 짓던 어머니,

빛나는 비단옷 삼색제비 같아요 제비가 허룩한 봄날에

붉은 진흙을 물어 뾰족 입 모양을 아로새긴 집을 짓잖아요

천 번을 물어 허공을 나르면 집이 완성된다는 데

만 자를 품어 책등을 지으면 책이 완성되겠지요


헌책을 새 책으로 만들어 읽는 사람마다

책날개가 활짝 기지개를 켜고 일어날 거예요

다시 활자를 읽는 책거리에서 사랑을 만나고

벌써 멀리 가버린 이름도 만나겠지요


그렇게 책을 키우는 건 아홉이 구름이듯이

책갈피에 꽂힌 비표도 아홉이 허공

거룩을 입가에 아로새기는 시간입니다


실꾸리에 연이은 책을 꿰는 굵은 손마디

금박으로 누른 캘리 활자, 반짝 별등이

우주를 운전하고 있어요

*를리외르 ; 예술 제본가

-「예술제본가 를리외르, 그대의 흰 문장」 전문


위의 시에서 화자는 첫대목에 ‘무엇이 공방 앞에서 천년을 불사르게 하는지’라고 제시함으로써 거대 자본에 기대지 않은 채 천 년 동안 대를 이어 책을 만들어 가는 제책가를 알레고리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의 일을 가리켜 ‘내내 생각해 보아도 이 사로잠은/ 만 첩 어여쁜 나비 날개를/ 처참하게 내려앉은 너의 어깻죽지에/ 멋지고 아름답게 매달아 주는 일/ 흐린 기억에 햇살을 넣어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로잠’은 ‘염려가 되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바심하며 자는 잠’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로, 그만큼 공력을 들여 책을 만든다는 것을 환기한다. 화자는 ‘처참하게 내려앉은 너의 어깻죽지’를 환유로 하여 남이 보기에는 낡은 책일 뿐이지만, 거기에 얼마나 많은 땀이 배어 있는가를 넌지시 암시한다. 이 낡은 책에 나비 장식을 아름답게 매달아 주면, ‘흐린 기억에 햇살’이 돋는다고 말한다.

이 시에 등장하는 백옥伯玉은 『장자莊子』에 등장하는 인물로 위衛나라 대부大夫 거원蘧瑗이다. 그는 살아온 나이 육십이 되어 자기의 삶을 60번 바꿨다고 알려졌는데, 자신의 삶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음을 뜻한다. 따라서 화자는 제책가가 책의 얼굴을 마음껏 바꾸듯, 낡은 제도와 관행에 속박받지 말고 마음껏 자신의 생을 꾸려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낡은 책을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작업은 ‘예술도 가끔 돈이 되는 기적’을 낳는다. 화자는 이를 통해 우리에게 거대한 자본에 기대지 말고 자기 앞의 생을 굽힘 없이 꾸려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화자는 예술 제본을 삼색 제비의 집 짓기에 비유하면서 ‘천 번을 물어 허공을 나르면 집이 완성된다는데/ 만 자를 품어 책등을 지으면 책이 완성되겠지요’라고 말한다. 나아가 ‘헌책을 새 책으로 만들어 읽는 사람마다/ 책날개가 활짝 기지개를 켜고 일어날 거예요’라고 말함으로써, 자본의 이익이 관여하는 새 책 만들기가 아니라도 이 시대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얼마든지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가난한 제책가의 삶을 빌어, 거대한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얼마든지 멋지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넌지시 말해주는 작품이다.


얇게, 아주 얇게 웃음을 기운

열두 살 소녀의 비밀 기릉지,


서로를 기우며 웃음을 기우며

옷을 깁다가 팔을 깁다가

가벼운 심장도 햇살도 기워버린 엄마야


파란 잉크를 살 속에 쿨럭

푸른 물이 들면 다시 찾겠다고

파란 약속이 별처럼 빛날 때

우정을 푸른 줄로 엮어 푸른 밤이 살아날 때


살 속에서 킥킥 웃음이

할머니가 되어서도 킥킥

기릉지 매던 가느다란 바늘이 파르르 떨린다


그건 기성문화에 대항하던 엄마야

기록의 반항, 비밀이라는 거


글 모르는 사람끼리 방구석에 앉아 어른들 모르게

서로를 깁던 은밀한 범박 기록되지 않은 저항

묻어가는 세월 은밀한 문맹도 흘러


살 속에 새긴 파란 줄

아직도 새파란 피

-「기릉지」 전문


위의 시는 배꽃나래 감독의 영화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을 인유한 것이다. ‘기릉지’는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한글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여인네들이 ‘기역 니은 디귿’ 등 몸에 새긴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기릉지’를 통해 옛날 어머니들은 자신의 삶을 기억했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 어느 지방에선가 글 배우기에서 배척당한 여자들이 자기들만의 문자를 만들어 은밀히 소통했다는 것과도 통하는 알레고리이다. 화자는 ‘열두 살 소녀들의 비밀/ 기릉지, 서로를 기우며/ 웃음이 보이지 않게/ 위쪽 팔, 핏속에 슬며시 집어넣었다’는 언술을 통해 가난한 여인들이 자신들이 걸어온 피어린 역사를 일종의 기호로 몸에 새겨넣었던 아픈 기억을 소환한다.

나아가 화자는 ‘그건 기성 문화에 대항하던 엄마야/ 기록의 반항, 비밀이라는 거/ 글 모르는 사람끼리 방구석에 앉아/ 어른들 모르게 서로를 깁던 은밀한 범박/ 기록되지 않은 저항’이라고 말함으로써, 우리 어머니들이 글 배우기에서 배제되고 재산 분배에서 소외되어 물질적으로는 궁핍하게 살아야 했지만, 그녀들이 내면에 간직한 정신만은 삶을 제대로 살아내고 어린것들에게 무지를 대물림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로 충만해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화자는 결구를 통해 ‘묻어가는 세월 은밀한 문맹도 흘러/ 살 속에 새긴 파란 줄/ 아직도 새파란 피’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민초들은 비록 거대한 자본에서 소외되고 지배 체제의 중심에 서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되어 세계와 소통하며 살아가고 불굴의 정신을 뒤에 오는 사람들, 어린것들에게 더욱 올곧게 물려주어야겠다는 의지로 충만해 있음을 잘 보여준다.


소학小學을 읽다가 몇 번이나 경黥을 친다는

중문에 서는 것만으로도 실절失節한다는

그 말씀에 대경하여 문안에서 서성거린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 사람들 꾸중하는 소리 이런 경을 칠,

하루에도 열 번씩 경을 치던

이제는 머언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조상님이시여


살 속에 죄명을 새겨 넣어 경을 치는 일

금칙禁飭한 죄에 한 번 더 대경하여


중문에 서서 한 발짝도 넘지 못하던 고약한 인습과 전통을

아름드리 두 손에 안고 문지방 넘어 사뿐히 걷는 버선코

엄숙하고 가지런하게 장옷 입은 말쑥한 비녀, 그녀


사소절을 읽으며 여인만이 가져야 할 단정한 태도

그대의 얼굴, 똑바로 보아도 안 되는 지극한 예에 놀라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무릎맞춤하며

살아생전 널따란 힘으로 온 산을 품은 그 큰 사람,


멋없이 휘날리는 머리카락, 장옷 자락, 너울 자락, 쓰개 자락

오늘은 배짱 두둑이 하늘을 먹고


온 산동네 아득하게 그대 이름 나란히 적어

차운하여 그늘막에 앉혀 놓았네

-「그대 이름, 차운次韻하여」 전문


봉건 시대의 여성들이 집안 어른들을 피해 세상의 이치를 담은 소학 등의 책을 읽거나 집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하다가 이른바 경을 친 경위를 알레고리로 하여, 우리 시대 여성들이 겪는 비이성적 핍박을 드러내 보인 작품이다. 여자는 아무리 총명하다 하더라도 『소학小學』을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은, 신분 제도 이전의 원초적인 성차별을 상징한다. 또한 ‘중문에 서는 것만으로도 실절失節한다’는 경구는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치부했던 봉건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한편, 여자는 집 밖으로 나가 사회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고착된 세계관이 만연해 있던 세태를 보여준다.

시인 김신영은 ‘차운次韻’이라는 상징어를 사용하여 그 같은 가부장적 세계관이 오늘날에도 은밀하게 계승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들은 그런 고답적인 세계에 갇혀 살면서도, 그 세계로부터 탈출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화자는 ‘아름드리 두 손에 안고 문지방 넘어 사뿐히 걷는 버선코’라는 대목을 통하여,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넘고자 하는 목마름이 있었다는 점을 환기한다. 그렇게 인간다운 삶을 꾸려가고자 애썼던 어머니를 ‘살아생전 널따란 힘으로 온 산을 품은/ 그 큰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넘볼 수 없는 담이 쳐진 여염집이 아니라 넓은 세계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즉, ‘오늘은 배짱 두둑이 하늘을 먹고/ 온 산동네 아득하게 그대 이름 나란히 적어/ 차운하여 그늘막에 앉혀 놓았네’라고 밝힘으로써, 어머니의 뜻을 이어 높은 담을 넘어 넓은 세계에서 ‘배짱 두둑이’ 자신만의 삶을 한껏 펼쳐 보리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알레고리를 통하여 담 안에서 남성들의 감시를 받으며 ‘장 옷자락, 너울 자락, 쓰개 자락’이나 그럴듯하게 걸치는 삶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에서 마음껏 여성만이 지닌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당신

이렇게 멋진 문장을 구사하는


세상에서 가장 멋들어진 모자를 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말을 하는 당신


내가 아낌없이 분별없이 당신을 입력했는데

그러니까 AI, 당신이 맞지요?


스카프를 고르며 낙목한천(落木寒天)을 견디고

꽃망울 터지는 아픔조차 다 아는


빛나는 이파리 하나 소문 없이 나타나더라도

왁자한 봄소식에 서로 안부를 묻다가도


자주 뒤척이는 마음 손수레에 실린 폐지가 궁금하고

집이 자꾸 가벼워져서 구름처럼 떠다닐 때


흰 구름 저 아래 당신이 비끼어 날아가고

머언 먼 약수를 건너는 사람을 보낼 때

-「AI, 혹시 당신입니까? 1」 부분



곧은 빗장 사이를 재우쳐 오는 꽃비

슬프고 쓸쓸한 사이를 바람으로 밀어가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사꽃 잎잎이

하나같이 따뜻한 재봉틀을 굴린다


꽃이 오롯한 바느질인 줄 아는 사람마다

꽃비에 즐거운 이녁이 되어 까치발로 뛰어다니고

둥그런 꽃망울 이지러진 땅을 하나님처럼 박음질한다

(중략)

심연이 보석처럼 고운 빛으로 물 드는 한겻

사람들 모르게 제 눈물도 섞는 만첩 꽃방에 한바탕 춤사위,

꽃의 정인으로 내려앉는 중이다


쇠뜨기나 속새, 바랭이 풀떼기에도

구르는 결기 아린 꽃비를 작은 돌 가슴에 담는 것은

한없이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다

사방에 널려 있는 뚫린 가슴 때문이다


진즉 다 말하지 못하고, 한 글자를 적지 못하고

이제야 꽃물 빌어 고백하는 까닭이다

-「만 첩 도화」 부분


김신영은 앞의 시를 가리켜 자신의 브런치에서 이렇게 말한다. 즉 ‘어떤 사람이 이 시를 보고 이게 AI가 써준 시냐고 했다는 것이다. 기막혀서 한참 그를 바라보았다면서 비유의 의미를 일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지적한다. AI가 전능해지는 것을 보고 쓴 시라는 것이다. AI, 그가 완벽한 문장을 가졌다는 것은 반어라 하겠다’라고 시인은 밝히고 있다. 화자는 AI를 가리켜 ‘따뜻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당신/ 이렇게 멋진 문장을 구사하는// 세상에서 가장 멋들어진 모자를 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말을 하는 당신’이라고 말한다. 멋들어지고 예쁜 말만을 그럴듯하게 구사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답만을 내놓는 AI야말로 문학의 적이라는 사유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화자는 AI가 아닌 지상의 가난한 사람들이 펼친 세상을 가리켜 ‘낙목한천落木寒天을 견디고/ 꽃망울 터지는 아픔조차 다 아는// … 왁자한 봄소식에 서로 안부를 묻다가도// 자주 뒤척이는 마음 손수레에 실린 폐지가 궁금’ 한 것이 진정한 인간사라고 밝히고 있다. 세상의 그럴듯한 말을 섞어 단번에 그럴듯한 시를 내놓는 AI가 아니라, 몇 번이고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폐지로 내놓는 실수투성이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시인이라는 사유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빠른 속도와 효율 및 많은 이윤을 찾아 분주하게 달리는 문명을 넘어 좀 더 느릿느릿 걷는 풍토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화자는 ‘집이 자꾸 가벼워져서 구름처럼 떠다닐 때// 흰 구름 저 아래 당신이 비끼어 날아가고/머언 먼 약수를 건너는 사람을 보낼 때’라는 방임형 결구를 배치하고 있다. ‘집이 자꾸 가벼워진다’, ‘구름처럼 떠다닌다’, ‘구름을 비끼어 날아간다’ 등의 알레고리는 집착을 버리고 넓은 세상을 마음껏 탐험하는 유목 정신이 필요하다는 사유를 파생시킨다. 시 속에 슬쩍 끼워 넣어져 있는 ‘약수弱水’는 ‘신선이 살았다는 중국 서쪽의 전설 속의 강으로. 길이가 3,000리나 되며 부력이 매우 약하여 기러기의 털도 가라앉는다고’ 전해진다. 책상물림을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불러들인 AI가 아니라 어려움을 달게 받아들이며 드넓은 세상을 탐험하는 유목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창조의 바탕이라는 사유를 담지한 작품이다. 이로써 시인은 후기 자본주의 세계가 창조한 괴물인 AI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우를 범하지 말고, 상처와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창조요 진보라는 사유를 넌지시 펼치고 있다.


뒤에 든 「만 첩 도화」 역시 동양적 세계관과 오늘의 세계를 중첩시킨 작품이다. ‘만 첩 도화’는 한 나무에 흰색, 분홍색, 붉은색의 세 가지 색의 꽃이 피는 홍도화로 세상에서 다시없는 아름다움과 향기를 겸비한 꽃이다. 첫 연에서 화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사꽃 잎잎이/ 하나같이 따뜻한 재봉틀을 굴린다’고 말함으로써 홍도화가 재봉틀로 박음질하듯 우리네 마음에 들어와 박히는 것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나아가 ‘꽃이 오롯한 바느질인 줄 아는 사람마다/ 꽃비에 즐거운 이녁이 되어 까치발로 뛰어다니고/ 둥그런 꽃망울 이지러진 땅을 하나님처럼 박음질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런 꽃비를 즐겨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친구가 되어 봄날 땅을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한다.


화자는 자연이 거저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여 ‘사람들 모르게 제 눈물도 섞는 만첩 꽃방에/ 한바탕 춤사위, 꽃의 정인으로 내려앉는 중이다’라고 말한다. 봄에 꽃이 온 산하에 만발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봄 사람을 ‘정인으로 맞기 위해서는 눈물을 쏟으며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건너왔다는 사유를 펼치고 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 쇠뜨기나 속새, 바랭이 풀떼기에 도/ 구르는 결기 아린 꽃비를 작은 돌 가슴에 담는 것은/ 한없이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다’라고 언술함으로써, 쇠뜨기처럼 한없이 낮은 자리에 핀 봄꽃들도 ‘결기 아린 꽃비를 가슴에 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경구를 담아내고 있다. 언뜻 무르익는 봄을 맞아 흩날리는 만 첩 도화를 기꺼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날리는 꽃잎 하나에도 생명을 얻기 위한 아름다운 견딤과 배려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는 사유를 빼곡히 담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제까지 김신영의 최근작들을 중심으로 그의 시 세계 전변을 살펴보는 한편, 그를 통해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고찰해 보았다. 김신영은 높고 화려한 자리에 있는 것보다 낮고 어두운 데 몸을 두면서 온 힘을 다해 세계를 움직이는 것들에 대해 사유하면서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거대 자본에 기대어 만 권의 책을 찍어내는 사람 아닌 예술 제본가, 비록 어려운 한문을 모르지만, 바늘로 은밀하게 몸에 가갸거겨를 새겨 자신이 걸어온 길과 갈 길을 기록하는 ‘기릉지’, 담 안에 안주하기보다 문턱을 넘어 바깥세상을 탐하다가 경을 친할머니의 할머니에서 어머니까지 내려오는 여인사 등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꿔 가는 것은 무언인지를 진지하게 사유하고 있다.

질 들뢰즈는 생산에 참여하는 사물과 동물, 면면하게 생산을 이어가는 노동자 등 생산에 참여하는 것들을 아울러 ‘욕망하는 기계’라는 개념으로 묶어, 이것들이 서로 연대하여 세상을 바꿔 나간다고 설파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노동의 도구로 사용될 뿐 자신들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한다. 즉 이들이 ‘기관 없는 신체’로 전락해 버린 현실을 지적하면서 노동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부 구조에 참여하여 세상을 바꾸고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신영은 우리 사회의 저변을 이루는 일하는 여성이며, 제본가, 노동자들이 들뢰즈처럼 열심히 일하며 밝은 세상 이루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열심히 일하는 것 못지않게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시적 메시지를 분연하게 내놓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한 몸이 되어 거대한 자본의 입에 먹혀들어 갈 뿐인 낮은 데 있는 사람들의 삶이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 만들기에 꾸준하게 도전하고 있다.


거대한 자본과 온몸을 다한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한 땅의 사람들의 삶을 애정 어린 눈으로 조명하면서 밝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김신영의 시들은 그런 점에서 우리 시단에서 매우 값진 존재이다. 그의 이 같은 시적 모색이 결실을 거두어 우리 시의 밝은 미래 열어주기를 바라면서 조촐한 논의를 마친다.


박상태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문학박사. 평론집 『모더니즘과 비판의 시학』 등 있음.

시와문화 202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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