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은 알지만 윤지당은 몰라요
성리학자 - 나를 여자라 여기지 말라
사임당에 버금가는 임윤지당은 조선시대 최초의 여성 성리학자이자 평등주의자다. 그는 수양과 실천을 통해 성인을 지향하였다. 그의 성리학 문집인 『윤지당유고』(1796, 정조 20)에서 역사의 인물에 대한 평가와 성차별을 하지 말라는 평등론, 그리고 성리학의 이상인 성인론까지 철학이 정리되어 있다.
임윤지당의 시「비검명(匕劍銘)」은 비장하게 칼에 새긴 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시에서 윤지당은 자신을 '여자로 여기지 말라'라고 선포한다. 나약하게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단호한 그의 의지는 칼처럼 예리하고 날카롭다. 여자로 여긴다는 것은 제이의 인간이자 내조자로서의 삶을 지정하는 것이기에, 그는 주체적인 삶을 살며 인간으로, 존재자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책에는 2편의 인물전과 6편의 설, 2편의 경의, 11편의 역사인물론, 3편의 제문 등이 실려 있는데, 「여성인물전」에서 여성이 도덕적으로 남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점이 눈에 띈다. 그는 벌써 그 시대에「송 씨 댁부인」이나「최홍이녀」 사건을 통해서 여성의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윤지당이 설파한 선견지명의 성인 인식은 이렇게 이미 시대를 넘어 차이가 없는 지점에 와 있었다.
성리학의 성리(性理)는 ‘사람의 성품이 곧 하늘의 이치다’라는 뜻이다. 성리학이란 사람의 도리와 규율을 다루며 자신을 수양하는 일이라 하겠다. 그것이 남녀차별을 만들었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는 분명 하늘의 이치가 아닌 사람, 즉 남성의 이치인 것이다.
그의 당호인 윤지당은 태임을 닮으라는 뜻으로 태교를 통해서 성인군자를 양육하고자 하였다. 그는 율곡의 기호학파 성리학을 계승하고, 여성도 학문을 할 수 있다고 당차게 천명하였다. 또한, 그는 우주와 인간의 원리를 설명하며, 이를 실천하는 방법을 중요하게 인식하여, 이(理)와 기(氣)의 일원적 본체관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는 역사적 인물을 성리학의 명분론에 입각하여 비평하며 인격수양의 바탕으로 삼기도 하였다.
가장 주목받는 윤지당의 사상은 '남녀의 존재를 상호보완적으로 인식'하였다는 사실이다. 남녀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만이 있으며, 현실에서의 남녀 차이는 역할에 있을 뿐임을 적시하였다. 그는 여자가 학문을 닦는 것은 하늘이 부여한 성품을 닦는 것이기에 남녀의 구분 없이 여성도 노력 여하에 따라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남녀차별의 성리학적 차별을 극복하고 성리학의 최고경지가 남자만의 것이 아님을 역설하였다.
내가 비록 부인의 몸이기는 하나 천부적인 성품은 애당초 남녀 간에 다름이 없다. 비록 배운 것을 능히 따라갈 수 없다 하더라도 내가 성인을 사모하는 뜻은 매우 간절하다.
그는 여성의 학문을 위한 정진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김운이 독학으로 글을 익혀 경서와 역사서에 통달한 것을 적으며 칭찬하기도 하였다. 즉 여성의 학문적 정진을 높이 평가하고 긍정적으로 그의 식견을 존중하였다.(윤지당유고)
다시 말해서 윤지당은 김운의 학문을 높이 평가하나 이를 막는 아버지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학식과 덕성을 갖춘 여성을 존중하며 차별의 현실과 충돌 없이 자기 수양을 통한 성인을 지향하였다.
연속되는 가족사의 비극에 자신을 다스리면서 그는 「비검명(匕劍銘)」이란 한시를 쓴다.
가을의 찬 서리로다, 빛이여. 뜨거운 해로다, 칼날이여
형체 없는 칼날이 그 날카로움으로 쇠를 끊네.
칼끝이 가리키는 곳에 백가지 악이 숨을 죽이네.
너의 위엄의 씩씩하고 너의 공로 신기하다.
도와다오, 비검이여. 나를 여자라 여기지 말라
그 칼날을 더욱 예리하게. 숫돌에 새로 간 듯이.
「비검명(匕劍銘)은 자신의 의지를 예리한 칼날에 빗대어 표현한 시다. 끊임없이 정진하고 수련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윤지당은 비검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또한, 자신을 여자로 여기지 말라면 여자라 할 경우에 따라오는 제약과 한계를 지적하며 경계하였다. 이에 도도한 당대의 물결을 헤치면서 예리한 비검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원주에 새로 부임한 신임 원님인 김창협은 윤지당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겼다. 이에 윤지당은 "여인이 아닌 공자께서, 어찌 부인들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여인으로 태어나 평생 자수나 치며 눈을 가리고 귀를 닫고 살아야 하는 그 마음을.. 공부를 하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설움을, 그것은 마치 그 가치를 모르고 암클이라 부르며 천시하는 훈민정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며 탁견을 드러내었다.
사실 김창협의 딸인 김운은 남장을 하고 과거를 보아 입신양명하려고 준비 중인 상황이었다. 김운은 윤지당을 스승으로 여기고 공부에 매진하였다.
당시 서얼이었던 이인상은 이러한 윤지당을 보고 "누구십니까, 대체, 누가 이런 어마어마한 생각을 합니까. 별을 품에 안는, 아니 그보다 거대한 사상입니다. 조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세종대왕께서도 서얼의 문제를 지적하셨으나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남녀평등, 이것이야말로 인본주의의 극의가 아니겠습니까"라고 찬탄하였다.
성인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보통 사람과 성인은 태극의 이치를 얻어 본성으로 삼았을 뿐이다. 다만 기품에 구애받고 물욕에 가린 바에 따라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 어진 사람과 못난 사람 등의 차이가 있을 뿐, 본성은 같다.-「안자의 즐거움을 논함」
나는 비록 여자이나 부여받은 본성은 남녀 간에 다름이 없으니 안연이 배운 바를 배울 수 없다 하더라도 성인을 사모하는 뜻은 매우 간절하다. 그러므로 내 견해를 대략 풀어서 밝힌다.-「극기복례위인설」
성인, 여성, 도덕의 실천 등의 문제에 자신의 위치에서 평생 성인의 경지에 나아가려 한 그의 뜻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당대 학문의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등 탁월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학자들은 그의 견해를 무시하고 도외시하였으며 논외로 여기는 등 평가절하하고 왜곡, 폄훼하였다.
*<윤지당 유고를 통해본 임윤지당의 생애와 사상> 전혜원, 2007. 참고
『윤지당유고』(1796, 정조 20)
사진 네이버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