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거리 낭인백서>

김신영 시인

by 휘루 김신영

<녹두거리 낭인백서>

무엇이 삶에 넝마를 걸치게 하였는지

낭패만 당하니 고시공부에 낭인이 되었다


몇 해를 엉덩이로 살았는지

천재소리를 듣던 두뇌가 녹 슬었고

손으로 꼽을 수 없는 하루가

태산이 되어 주름을 짓는다


오래도록 혼자 살고 지지고

한동안 사람들을 못 만나고 지지고

대딸방에서 만난 그 여자의 엉덩이도

원빠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이트장에서 풀었던 고독도


모두 한순간의 면류관을 위해 존재했다

빈둥거린 것은 아니다.

확실하게 빠를 출입 하며 열을 냈던 것도 아니다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은 것도 아니고

없는 아내와 말다툼으로 별거한 것도 아닌데


밤새서 말아먹었던 강의테이프들이

아침이면 거미줄처럼 늘어져 거리를 쓸었다


어디쯤 손을 잡고 걸었던

느티나무 그늘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무엇이 삶에 넝마를 걸치게 하였는지


낭패만 당하니 고시도 먼 나라 이웃나라

거리에 넘치는 고함소리

가시나무새 되어 밤을 밝힌다


시집 <불혹의 묵시록>(천년의 시작, 2007)


이번 시집에서 ‘녹두’와 ‘아바타’는 5편 정도의 작품에 나타날 뿐이지만 유달리 관심을 끈다. 시집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듯도 한 ‘녹두’와 ‘아바타’야말로 이 시대 ‘불혹’의 세대가 겪는, 혹은 어지러운 오늘날의 세상에서 갈등과 아픔을 겪고 있는 군상들의 표징일 수도 있으리라. 시인은 어쩌면 ‘녹두’를 통해 ‘(사회) 저항 또는 패배 의식’을, ‘아바타'를 통해 ‘(소시민적) 적응 또는 現脫(현실탈피) 심리’를 표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신영 시인은 충북 충주 출생이며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현대 여성詩의 공간상징연구>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한 뒤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평론집 <현대시, 그 오래된 미래>등을 상재하고 현재 호서대, 협성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 안재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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