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가장자리

김신영 시인

by 휘루 김신영

<종이의 가장자리>


하느님 당신이 그리운 사람입니다

가슴이 꼬옥 닫힌 사람


구멍 숭숭 난 제 가슴에 아직도 찬바람만 불어요

당신에게 속살이는 이 말이 들리시나요


하느님 당신이 저를 사랑하신다면

저를 안아주세요 하느님


당신의 그늘 구석에 매몰되어

바람만 맞는 허기진 저를.


우리끼리만이라도 다른 이야기는

하지 말도록 해요


당신이 내 기도를 듣고 또 들어주신다면

시간 조금 오 분을 틈 내어

내 가슴에 불을 심어주세요


홍수로 갈아엎은 세상

불을 일으킬 시간일지라도


하느님 당신이 정말로 나를 사랑하신다면

고운 손길로 나를 보듬어주세요


쉼 없이 혼자 걸어온 이 길의 끝

찬바람만 부는 벼랑에 서 있는 저를


하느님 정말로 꼬옥 안아주세요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문학과 지성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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