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의 이름에는 온갖 찬사와 미사여구가 붙는다. ‘탈주의 서사’로 불리는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그는 인생에 대한 횡보도 또한 극적이다.
그의 혁명적인 진취성과 적극성, 파격적이며 초월적인 자아, 근대적인 의식은 아무리 그를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었을 만한 문구들이다.
『나, 황진이』(푸른역사, 2002)를 쓴 작가 김탁환은 ‘누구나 황진이를 알지만 아무도 황진이를 모른다’라고 일갈한다. 그만큼 황진이에 대하여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으며 제대로 된 사실이 전해지는 것이 없다는 말도 된다. 사실 황진이를 제대로 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황진이의 기개를 제대로 표출하는 작품을 만나기가 어렵다. 한결같이 농염하고 젖빛 피부를 가진 여인이 되어 야한 장면을 연출한다. 비록 야사라 하더라도 황진이라면 성격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터, 기개와 걸출한 대화가 없어 아쉽다.
『황진이』(대훈, 2002)를 쓴 홍석중은 야담과 여러 책에 기록된 고사에서 내용을 가져왔다. 사실에 의존하기보다 기록된 야사를 기본으로 선정적인 표현을 하며 창작하였다는 말이다.
<송도에 관련한 책이 넘치는 이유>
개성의 송도는 황진이로 인하여 유달리 특별한 도시가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여러 자료에 유독 ‘송도’에 대한 기록이 많은 것이 바로 그 까닭이다.
인물이 많기로는 평양이나 서울이 더 유명한데 평양이나 서울에는 ‘평양 기이’나 ‘평양 인물지’, ‘한양 기이’나 ‘한양 인물지’와 같은 책이 없다. 이로써 송도의 황진이가 얼마나 걸출한 인물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조선 역사에서 다시 볼 수 없는 500년 만에 나타나는 기이하고 진중하며 뛰어난 인물이다. 아니 한반도의 역사를 다 논한다고 하여도 황진이와 같은 인물이 없다.
따라서 그는 대문호요, 위대한 작가요, 초월적 자아를 가진 자이며, 초월 철학을 가진 혁명적인 인물이라 할 것이다. 그것을 지금껏 그의 여성성과 신분을 앞세워 폄훼하고 가두며 평가절하하며 그 당시의 확인되지 않은 야담류로 그를 격하시켰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평가하여 그의 위대성을 드러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