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대잔치에 놀아나나?
검증이 없는 댓글
<대중은 아무 말 대잔치에 놀아나나?>
댓글의 특성 중 하나가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다는 점이다. 심한 말을 해놓고도 아니면 그만이고, 말뿐인데 뭘, 하면서 어떤 말도 서슴지 않고 휘갈겨댄다. 예를 들어 며칠 전에도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다고 하여 별 잘못도 없는 사람을 향해 ‘00의 멱을 따야 된다.’는 댓글을 보았다. 참혹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극악한 말을 쏟아 놓고 말뿐이었다고 하는 그런 행동은 반드시 강력한 처벌 조항으로 호되게 처벌하여야 한다.
또한 이를 걸러내고 적발하는 시스템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야 한다. 댓글을 잘못 쓰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개인을 위협하고 혐오하게 하며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문구들로부터 진실을 지켜내야 한다.
개그콘서트의 코너 중 <아무 말 대잔치>가 있었다. 그야말로 아무 말을 막하는 것이다. 실제 의미와는 상관없이 표현된 언어로만 해석하거나 엉뚱하게 말장난을 하거나 그냥 던져 보는 말이거나 상황이나 맥락과는 상관없는 뜬금없는 말을 쏟아 웃음을 유발하였다. 아무 말을 아무렇게나 하여 희극적인 요소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언어가 표출될 때 상황이나 맥락에서 언어가 일정 부분 기대되는 것이 있는데 이를 비틀 거나 뒤집거나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등의 행동으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연출하여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개그콘서트는 TV라는 매체를 통하여 전달되며 이로 인하여 행동 이후에 그에 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많은 사람이 검증하는 시스템을 거쳐 인종차별 논란이나 여타의 차별논란을 없애야 한다.
또한, 인터넷댓글 역시 검증이 없다, 아무 말 대잔치라 하여도 개그콘서트는 대중을 향한 방송으로 적합한지 웃음 유발이 가능한지 미흡하나마 매시간 나름의 검증을 통해서 존속하지만, 댓글은 아예 검증이 되지 않으며 검증할 필요성도 갖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냥 짧은 글이며 아무나 쓸 수가 있기에 굳이 검증을 요하지도 않는다. 시시껄렁하게 던지는 말로 치부한다. 문제는 읽는 사람들의 태도에도 있다 하겠다.
댓글은 아무 말 대잔치의 막말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글을 자주 읽다 보면 이성적인 상황과는 다르게 사실로 믿게 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한 댓글에 댓글이 달리면서 사실처럼 공고화되고 심지어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를 수 있는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짧은 글이 가져온 변화는 댓글의 범람과 더불어 획기적인 전환이 자주 일어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야말로 역대급 태풍으로 발전, 진화하는 댓글을 만난다.
이제 댓글은 공룡처럼 성장하여 댓글이 없으면 맛집도 신뢰성을 잃고, 펜션도 믿을만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것을 댓글을 통해서 판단하는 습성을 지니게 된 우리는 이제 댓글에 매달린다. 댓글을 보고 선택하고 판단하며 신뢰를 보낸다. 이로 인하여 생기는 작용과 반작용은 만만치가 않다.
산의 정상에 가면 나무들이 지면에 바짝 붙어 자라는 것을 보게 된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줄기 가지가 대부분 휘어져 있다. 바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 할 것이다. 즉 자신을 낮추어 혹독한 날씨에 적응하고 견디고 저항하는 힘을 기른 것이다. 자라고 싶은 데로 자라다 보면 거친 바람에 나무는 꺾이고 급기야 쓰러지고야 말 것이다.
자연의 이러한 섭리를 보면서 겸손을 배운다. 너무나 자유로워 제한이 없을수록 더욱 겸손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교훈이라 하겠다. 특히 유명인들은 악플러의 공격에 자신을 더욱 낮추고 겸손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에 맞서 대응하다간 부러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이 옳다면 공격을 받더라도 누가 뭐라 해도 꿋꿋하게 견디는 낮은 포복도 필요하며 때로는 고소고발을 통해 법적 처리를 강구해야 한다.
왕은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고 스스로는 스스로의 무게를 견뎌야 하듯이 말이다. 유명세로 하여 한눈에 받는 찬사와 질시가 실로 대단한 위용을 발휘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