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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Mar 25. 2022

내 마음 속 봄날의 풍경

봄 속 까치의 울음도 기쁘지 않다. 이미 내 봄을 온통 적시고 있기에..


살금살금 왔을까 폴짝 뛰어 왔을까. 봄기운이 살랑거린다. 언덕에 나무는 새순을 밀어내고, 꽃나무들은 꽃샘 추위를 염려한다. 칙칙하고 도톰했던 겨울이 미련 없이 떠나갔다. 상큼한 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남쪽부터 봄이 화르르 왔다. 서걱서걱 사각사각 풍기는 봄의 향기가 맑디 맑다. 봄의 힘이 느껴지니 동장군에 움츠렸던 세상사 소심함을 훌훌 털어낸다. 사람 사는 세상마냥 계절에도 질서가 있다. 겨울이 비켜나니 계절의 경계를 넘어선 봄이 오고, 찾아온 봄은 눈 부시다. 동백을 넘어 섬진강 변에는 매화가 피고, 벚꽃이 흐드러진다. 간간이 들려오는 남쪽나라 꽃 소식에 몸이 움찔거려진다. 벌써 그 쪽 너머에는 꽃 잔치가 벌어졌다. 봄이 말하고 있다. 꽃 대궐은 안될 망정 봄 대궐을 찾아가서 새 봄을 맛보란다. 봄 꽃 고운 때깔을 몸에 두르고 마음에 덮어 써보라 한다. 그런 봄이 곁에 왔다. 봄이 왔다.


아내가 울고 있다. 우는 소리에 놀란 남편은 아내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내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져 있고, 이어폰의 하얀 줄로 눈물이 타고 내리는 것 같다. 아내의 눈은 태양빛을 쏘듯이 스마트폰을 자극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오른쪽 귀에 걸려 있는 이어폰을 뽑아 자신의 귀에 옮겨 넣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그대여 우리 이제 손 잡아요 이 거리에 마침 들려오는 사랑 노래 어떤가요~ 사랑하는 그대와 단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아내는 “그냥 눈물이 났어. 물론, 나도 이유를 모르겠어. 왜 그랬지? 눈물이 자꾸 흘러 내렸어.” 그러고는 아내는 벚꽃이 피는 날, 당신 손을 꼭 잡고 둘이 걸었으면 해요. 그렇게 해 줄 수 있죠?” 남편은 “그러자.”고 대답했다. 그리고 남편은 그 일을 잊었다. 남쪽부터 꽃 잔치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벚꽃이 흐드러진 길을 아내와 둘이서 걷기로 한 약속을 다시 생각한 것은 벚꽃 소식이 들려오면서부터다. 잊혀졌던 사랑이 봄 꽃을 타고 오는 것처럼 가슴은 뛰었다. 그렇게 봄날이 왔다.


둘이서 걷기를 원하는 아내와 달리 남편은 아침마다 뛰고 있었다. 삶을 영위하는 일의 종류가 바뀌고 나서다. 지금은 고속철도를 이용하지만, 몇 해 전 남편은 아침마다 중소도시까지 고속버스 편으로 출근했다. 새벽에 지하철을 놓치면 첫 버스를 놓치고 만다. 몇 분의 차이가 몇 십 분의 손실을 가져오는 것이다. 손실된 시간이 모이면 몇 시간이 된다. 그래서 남편은 걷는 것 보다는 달리는 걸 더 좋아했다.

 

인생도 뛰는 것이다. 주어진 나름의 목표를 향해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목적지가 멀리 있는 사람은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열심히 달린 사람은 숨을 돌리면서 목표에 더 근접하도록, 혹자는 목표를 추가하기도 할 것이다. 목표를 정하거나 꿈을 갖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들을 위해 정도를 벗어나거나 편법이 동원돼서는 안 된다. 성공 만이 목표 달성은 아니다. 한국 마라톤의 신화 이봉주 선수는 달리는 목표가 “우승이나 기록 같은 건 아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준비했고, 잘 뛰었구나 라는 말을 들으면 된다.”고 말했다. 봄날은 뛰기에도 좋은 날이다.


사람들은 운동으로 달리기를 한다. 그것은 건강을 위해서다. 건강이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달리는 것이다. 숨을 쉬거나 밥을 먹는 건 살기 위한 사람의 목표다. 사람들은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은 목표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목표를 잊고 있는 아닌지, 뛰는 걸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볼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심호흡을 다시 한 번 크게 하고 열심히 뛰기 시작하자. ‘오늘’이라는 선물은 모두에게 주어진 똑 같은 하루이다. “잘 뛰었구나!”하고 자신한테 칭찬할 수 있도록 뛰어보자. 그렇게 열심히 뛰고는, 아내의 제안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꼭 잡고 봄바람 휘날리는 벚꽃 길을 둘이서 걸어보자. 햇볕 내리쬐는 양지 길 사랑하는 사람과 손 잡고 걸으면서 인생을 생각하기에도 봄날은 좋은 날이다.


사람은 마음 먹기에 따라 눈 앞의 세상이 달리 보인다. 이른 아침, 까치의 지저귐은 이미 내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일터를 향할 수 있으니……. 무의 앙상함이 푸르름으로 채워지고 있다. 온 세상이 푸르른 날이 될 것이다. 뼈대가 앙상한 나무 위에서 불안하게 사랑놀이 하던 까치 한 쌍은 이젠 솜처럼 푹신한 잎들 속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하얀 목련은 세상을 비추는 조명처럼 환한 날들을 만들었다. 까치의 지저귐에 기쁜 인생을 맡기기에는 봄날은 정말 아름답다. 멋진 봄날의 풍경을 그려보는 마음으로 봄의 숨을 쉬어본다. 까치가 울어도 기쁘지 않다. 이미 봄이 내 몸을 온통 적시고 있기 때문이다.


까치가 울어도 기쁘지 않다


아침의 문을 열다

까치의 울음은 내게 다가온 첫 시빗거리고

급한 듯 화난 듯 고함인 듯

탁상시계의 알람 만큼 날카로움에 굳어버린다

소리가 세상을 열다

까치의 언어는 내 당신이 돼 달라는 구애라던가

바라보라 연애하자 사랑하자 그렇게 그렇게

저 너머 연인의 속삭임만큼 달콤함에 비워버린다

까치가 나를 깨우고 가르친다

무디어진 감각과 잃어 버린 사랑의 합일을

뾰족한 듯 따끔하게 간절한 듯 열렬히

짝을 찾아 울며 나서는 까치의 사랑은

마냥 까치는 보고 배우라는 듯 더 운다 더 운다

까치는 아침 삶의 시작을

경쾌한 울음을 버릇처럼 부유하게 살고

나는 아침 삶의 시작을

새벽 별의 벅찬 혼신으로 살다가

맑은 아침 하늘과 땅 사이 까만 작은 점만한

까치를 보고서야 까치를 넘어 사랑을 본다

나는 까치가 울어도 기쁘지 않다

까치가 되어 볼 테니 사랑이여 와 줄 텐가

나는 까치가 울어도 하나도 기쁘지 않다


사람의 마음은 봄밤의 별처럼 빛나야 한다. 그 빛의 힘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고난과 번뇌의 순간마저 행복으로 바꾸는 마법의 시간이 된다. 봄날의 아침, 오래된 건물의 바랜 색깔마저 유럽의 전통 있는 캐슬과 같은 느낌이다. 내 마음 속 봄날의 풍경에 영민한 해리포터를 집어 놓는다. 


해리포터는 창의적 스토리텔링으로 세계를 열광시켰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가난한 미혼모였다. 책을 살 수 없을 만큼 가난했던 그녀는 자신의 자녀에게 보여 줄 책을 만드는 진솔한 창의성으로 세상을 감동시켰다. 조앤 롤링은 말했다.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실패가 현실로 다가오자 오히려 저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실패했지만 저는 살아 있었고, 사랑하는 딸이 있었고, 낡은 타자기 한 대와 엄청난 아이디어가 있었죠. 가장 밑바닥이 인생을 새로 세울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 준 것 입니다.” 

봄은 삶을 창조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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