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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May 13. 2022

가족을 태운 버스 운전사

가족을 태운 버스에 운전사가 바로 우리들이어야 한다

큰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제비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부터 사람들의 제비 사랑은 각별했다. 흥부놀부전이 그렇고, 제비에게 해를 입히면 학질에 걸린다고도 했다. 사람과 공통된 지(知), 정(情), 의(義)를 가진 동물이 제비라고 일컫기도 한다.


작은 도시에 자리잡은 사업장의 초라한 기둥에 보금자리를 지은지 6년째다. 부부제비는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 올해도 잊지 않고 돌아왔다. “박씨라도 물고 왔니?” 농담을 던져도 그저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만 부른다. 먼 고향을 찾아오는 자손들처럼 귀한 선물이다.


가수 조영남이 불렀던 <제비>라는 노래가 있다. 멕시코 민요인 <La Golondrina>가 원곡이다. 가사에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먹구름 울고 찬 서리 진다 해도/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고운 눈망울 깊이 간직한 채/ 당신의 마음 품으렵니다/’. 


돌아온 제비처럼, 온 세상을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봄날의 연속이다. 제비 가족의 단란함과 화목함은 5월 가정의 달의 모범 사례이다.


가족은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어려울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가족이다. 가얏고로 불리는 가야금. 오동나무에 명주실을 꼬아 만든 12줄 현악기이다. 손가락으로 줄을 뜯으면 고운 소리가 난다. 


가야금은 단아한 모양만큼 청아한 소리를 감추고 있다. 맑은 시냇물 소리처럼, 때로는 정다운 고향 마을을 스치는 바람소리 같다. 튕길 때 나는 소리는 화창한 봄 날 햇살만큼 청량하다.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있다. 심금(心琴). 마음 속 가야금을 말한다. 


심금의 사전적 의미는 자극을 받아 마음에 감동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나의 심금, 너의 심금, 사람들은 저마다 가야금 한 대씩을 가슴에 품고 있다. 심금은 기쁘거나 행복할 때면 울린다. 슬프거나 괴로울 때도 심금은 소리가 난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우리 마음의 가야금에 이렇게 여지없이 줄을 당긴다. 


눈 부신 초록의 5월이요 가정의 달이다. 내 가족 마음 속 가야금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심금이 구현해내는 소리를 접해 보라. 무음(無音)이면 손가락을 튕겨 연주하고, 비음(悲吟)이면 위로해보라. 그후, 바로 이 순간 받는 봄볕만큼 좋기만 한 합창소리가 귓가에 들려올 것이다. 그 소리는 누가 뭐라해도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일 것이다.


‘장이’와 ‘쟁이’가 있다. 둘 다 접미사다. 장이는 ‘그것과 관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쟁이는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가족장이와 가정쟁이라는 말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가족과 관련한 기술을 가진 이가 없기 때문이다. 가정의 속성을 가진 사람 역시 없다. 굳이 있다면 ‘누구 누구는 참 가정적(家庭的)이다’ 라는 정도다.


5월은 유난스럽게 ‘가족’과 ‘가정’을 이야기한다. 일 년 열 두 달, 삼백육십오일 내내 잊어서는 안 될 단어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유독 5월에 집중된다. 하긴, 우리 가정과 가족이 5월 한 달 만이라도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아무튼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사랑과 행복은 가정과 가족한테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할 때 가정은 천국이고, 그 속에서 사는 가족들은 천사들이다. 천사들의 합창이 화음으로 맞춰질 때 사랑이 넘쳐난다. 그와 같은 세상이 바로 땅 위에 있는 천국이다.


클레어몬트대학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저서 <몰입의 즐거움>에서 말했다. “가정의 형태가 아무리 변화무쌍하게 펼쳐져 왔다고는 하지만 한가지 변하지 않는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곧 성이 다른 두 어른이 결합하여 서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면서 자식에 대해 책임을 함께 나누어 가진다는 사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숙련된 기술로 가족과 함께하는 가족 ‘장이’, 온화하고 다정한 속성으로 가정을 지켜주는 가정 ‘쟁이’가 되어 보자. 5월 하늘이 더욱 파랗게 보이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가족버스에 오른다. 여전히 버스 방향은 미지의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 사랑과 희망, 열망에 생각을 집중한다.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몸에 긍정 에너지를 채운다. 눈을 감는다. ‘희망 에너지’를 생각한다.

 

버스에는 이런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이 버스는 희망에너지가 가득합니다. 가족을 생각하신 분들은 얼른 올라타세요.’


월요일, 희망의 빛을 보았다.


오늘 따라 유난히 많은 승객들로 버스가 붐볐다. 한 정거장에서 몸이 몹시 불편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차에 올라섰다. 젊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정겹다. 몇차례의 긴 호흡을 내쉬는 아주머니 가방 속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사색이 방해되지 않도록 이내 전화를 받았다.


“알았어요.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아요. 간밤에 행복한 꿈을 꾸었거든요. 그리고 아들 녀석이 출근하는 내게 “사랑해요, 엄마!”라고 했어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해요. 아들이 내게는 희망이잖어요.”


화요일, 버스가 펑크가 났다.


약간의 다툼이 생겼다. 한 승객이 문이 닫히려는 순간, 뒷문으로 올라탔기 때문이다. 직장인인 듯한 아저씨가 부리나케 운전기사석으로 다가갔다. 삿대질을 했다. 기사아저씨도 소리를 질러 정당함을 밝혔다. 각박한 인생의 현실이 작은 버스 한 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다.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누군가 말했다. “두 사람 다 누구의 아버지요, 아들이잖아요. 우리 마음 속에 ‘배려’와 ‘관용’의 문구를 새겨요.”


수요일, 사랑을 채우다.


버스가 정거장을 출발한 지 몇 분에 멈춰 섰다. 몇차례 덜덜거리던 버스의 움직임에 대한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승객들이 모두 내렸다. 뒤이어 올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속에서 짜증이 묻어났다. 왜 버스가 고장이 난 걸까. 사람들은 사전점검에 철저하지 못한 버스회사한테 화가 났다. 이 또한 일상일 수 있다.

속절없이 봄바람이 햇살을 잔뜩 머금은 채 얼굴을 때렸다. 고개를 돌렸다. 순간, 예고치 않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에 집중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무엇이든 사랑의 힘으로 가능하다. 화가 날 때 사랑을 앞세우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목요일, 절망 너머에 희망이 있다.


차창 너머 가로수 잎들이 신록의 미를 자랑하고 있다. 곳곳이 초록색이 감싸고 있다. 눈이 시원하다. 마음이 저절로 열린다. 자연의 흐름 속에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나무들에게, 역시 봄은 희망이다. 절망을 넘어 곧바로 희망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희망의 에너지가 바로 가족의 힘이다. 


금요일, 열정의 에너지를 입는다.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모든 승객들이 하차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무표정이다. 무표정이란 곧 평범의 태도를 말함이다. 평범은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열정을 가슴에 품어야 한다. 보통의 삶은 열정을 식게 하거나 아예 없앤다. 열정적 에너지가 삶을 생동감 넘치게 만들어준다. 열정이란 단어를 마음 곳곳에 도배한다. 열정은 주식(主食)이다.


토요일, 버스를 타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지난 날들을 복기한다. 희망이 있었고, 관용과 배려가 있었다. 사랑을 채웠고, 절망 보다는 희망이 꿈꿨다. 그리고 열정의 에너지를 받았다. 가족을 태운 버스에 운전사가 바로 우리들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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