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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Mar 23. 2023

봉달호 작가의 <셔터를 올리며>를 읽고

나와 함께 했던 나의 인생과 삶에 대한 결과를 점검해보기 좋은 책...

막연하지만, 평소 늘 ‘이런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잘난 - 혹은 잘 났다고 자족하는 - 사람들, 멋진 - 혹은 멋지다고 뻐기는 - 사람들을 모두 버리고, 보통의 인생을 살아가는 - 혹은 녹록치 않는 삶을 사는 - 사람들을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 사람들의 희노애락 속에서 웃고 울고, 또 기뻐하고 함께 박수치면서 그들의 삶들을 오롯이 ‘서사’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보통의 사람들의 인생이 잘난 사람들, 멋진 사람들 보다 훨씬 깊이 있는 호소력으로 감동을을 봇물처럼 쏟아낼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이들의 삶이 보태지고 더해져서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었고.


여전히 그것을 ‘의무’로 여기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아니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는 전술을 갈고 닦고 조이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참이다. 비록 마음 속에서 이지만.


편의점 운영주 이면서 에세이스트인 봉달호 작가의 <셔터를 올리며>를 읽었다. 하루만에 책을 모두 읽고, 의무와 책임을 '마음 먹음'에서부터 얼른 마음 밖으로 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집안의 장사 - 경제와 경영, HR(인적 자원) - 역사를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행운의 열쇠를 손에 꼭 쥔 느낌이었다. 


나는 인터뷰어가 되어 질문을 하고, 봉달호 작가는 인터뷰이가 되어 질문 보다 훨씬 더 풍족한 답변을 내놓았고, 그러더니 인터뷰이가 아예 서면 인터뷰를 하듯이 한 가족의 소사를 진주 구슬을 꿰듯이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 책처럼 사람의 삶은 살아온 이야기가 종종 글이 되고, 글은 감동이 되고, 감동은 사랑이 되는 법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뭘까? 뉘는 책을 통해 옛것을 바꾸고 새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자 할 것이고, 뉘는 몰랐던 것을 깨닫기 위해서일거고, 또 뉘는 그렇게 따라 해보자는 다짐의 계기일거고, 또 뉘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일거고, 또 뉘는 행복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일거고, 또 뉘는 남는 시간을 쏟아붓는 것일테고, 또 뉘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처방전으로 쓰일일테고….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바지런히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라면, 또달리 지난한 삶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는 어떻겠는가. 보통 사람들의 지고지순한 삶을 향한 사랑 이야기 또한 이렇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인생에서 기억 만큼은 살려야 한다. 기억은 바로 우리네 인생의 역사실록이 되는 법이니까. 


세상엔 우묵한 기억과 불룩 튀어나온 기억이 있다. 시골 마을에서 나를 키운 가게는 우묵한 기억 속에 들어가 있다._34쪽


가족은 세대가 이어지면서 다른 듯 닮고 닮은 듯하면서도 돌연변이적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외형상 모습이 닮지 않았어도 행동과 생각이 똑같고, 또 미운 행동은 어찌 그리 잘도 물려 받았는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꽉 다물어도 밖으로 나오는 결과는 닮기 싫어했던 것들과 매우 흡사하다며 소스라치게 놀라곤한다. 그것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웃음과 울음,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이 누구든 편애하지 않고 가족들한테 다가온다. 그래서 인위적 시도를 하지 말고 세월의 흐름에 그냥 맡기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


사람이 한 줄기 바람이고 인생이 바람이 지나가는 길과 같다면, 바람이 지금 오는 길목을 지나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먼 길 지나 바람이 지난 길을 돌아보면 그제야 그 길목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풀이하게 된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바람의 여정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안타까워 할 필요까진 없겠다. 어쨌든 다 지나간 일이니까._83쪽


더불어 삶의 교훈 대부분은 가족한테 나온다. 그것을 내것으로 가져가는 것이 문제인데, 역시 봉 작가는 명불허전의 글쟁이였다.  작가는 글 속 엄마의 사리분별력, 아빠의 결단력의 절반 이상을 자신의 몸에 싣는데 성공했다. 통상 부모를 닮지 않아야 아픈 청춘을 벗어난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틀린 답이었다.


두 가지 끝이 있다. 힘과 지혜를 있는대로 짜내서 끝을 보겠다는 파릇한 끝이 있고, 나는 여기까지라고 지레 포기하는 회색빛 끝이 있다. 어떤 끝은 갈고 닦으며 번쩍번쩍 빛났고, 어떤 끝은 시무룩 초라하게 이울었다. 우리는 이 끝과 저 끝 사이를 이어가며 살아간다. _149쪽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작가 집안의 셔텨 이야기는 마치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는 듯 평지가 있는가하면 고개가 있고, 걸어가다 보니 훌쩍 정상이 있었다. 우연이라고 했지만 필연이 있었다. 가족의 고뇌와 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람들이 우연이라고 우겨도 속을 파보면 그것은 모두 필연의 사유가 있다. 저릿한 삶 속에서 우리는 '운이 좋았다'고 느끼고, 그것은 나중에 '우연'이라는 답으로 인생에 표기될 뿐이다.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세상일 가운데 사실은 이렇게 우연과 우연이 겹쳐 아루어지는 것들이 많다._161쪽


때로는 묵묵함이 커뮤니케이션이다. 혼자 만의 생각이 세상과의 소통이 된다. 고개를 살짝 만 돌리면 해바라기 처럼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들어올린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듬았던 사랑 보다 그 이상의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거리에 있는 숱한 가게를 볼 때마다, 더욱이 식당을 볼 때마다, 나는 저곳이 그냥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얼마나 많은 피와 따꽈 눈물이 배어 있을까 상상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국밥 한 그릇 허투루 먹을 수 없게 된다. 부모님은 내게 그런 것을 가르쳐주셨다. 한마디 말도 없이 가르쳐주셨다._176쪽


엄마는 엄마여서 엄마다. 자식이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새로운 길을 떠난다고 하면, 엄마의 마음은 난리법석을 피우겠지만, 엄마의 마음은 늘 '사랑'뿐이다.


“네가 어디에서 뭘 하든, 나는 네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_207


나 역시 작가의 아버지 처럼 일찍 선친을 여의었다. 그러다 보니 글 중 아버지의 넋두리가 나의 가슴으로 들어왔다. 꽤 울컥해서 책읽기를 멈춘 채 한참동안 선친을 생각했다. 오는 4월이면 고향의 선산에서 선친을 이장(移葬)할 계획이다. 그러면 60년 만에 나는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검은 흙 속에서 비로소 몸을 내밀어 빛을 보게 되는 그날, 나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라고 불러 볼 수 있을까. 대상을 앞에 두고선 처음 불러 보는 아버지가 될 것이다. 역시 가족은 사랑과 행복의 힘이어야 하고, 힘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요?”

“행복?”

행복이라는 말을 태어나 처음 들어본 사람처럼 아바지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 자식이 글을 쓰드만 시인이 다 됐네.”

잠깐 침묵이 흘렀다.

“행복이라…..”

아버지가 운을 띄웠다.

“너희들이랑 있을 때는 언제나 행복했지.”

“아니 그러니까, ‘언제’ ‘가장’ 행복했었냐고요.”

취조하듯 따졌다.

“언제라니? ‘언제나’라니까.”_173


어버지에게 아버지는, 한 번도 다정히 불러보지 못한, 그저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호칭이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아버지가 우리에게 서툴렀던 이유도, 아빠가 아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었던 것이다._231쪽


어느 날이었다. 지하철에서 시각장애인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남편은 하모니카를 불면서 동전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아내는 길다랗고 하얀 지팡이를 짚고 남편의 팔을 꼭 잡은 채 따랐다.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남편의 얼굴과 달리 아내의 표정은 편한 듯하면서 약간의 웃음기가 있었다. 남편의 팔에 의지한 채 따라가는 모습이었지만, 믿음과 사랑이 미소임직하게 표현되지 않았나 싶었다. 지금 표출되고 있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꽃을 보는 마음이었다면. 이제껏 봐왔던 꽃과 달랐지만 아름다운 꽃이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 정도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 때 루쉰 전집을 다시 읽었다. '조화석습'이라는 말의 뜻도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그 수필집에 실린 글은 원래 루쉰이 어떤 신문에 구사중제(舊事重提, 옛일을 다시 들추다)라는 주제로 연재했던 글인데, 책으로 묶으며 '조화석습'이라는 제목을 새로 달았다. 이유를 서문에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과거를 살펴보는 일은 그저 '들추는' 일이 아니라는 것. '돌아보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꽃을 줍는 '결과'가 아니라 돌아보려는 '자세'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아침 꽃을 저녁에 주울 수도 있다. 하지만 줍지 않으면 또 어떠랴. 꽃을 돌아보는 '마음'의 소중함을 간절히 깨닫는다._270쪽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책을 꼭 쥐고 한참을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썼던 글 하나를 떠올렸다. '욕심과 소유를 내려놓는다는 것, 참 편한 일이다. 사랑과 행복을 끌어당긴다는 것, 참 좋은 일이다. 기쁨과 환희를 몸에 넣는다는 것, 참 벅찬 일이다. 희망과 소망을 불어넣는다는 것, 참 환한 일이다. 슬픔과 고통을 떨어트린다는 것, 참 매운 일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나눈다는 것, 참 복된 일이다. 세상이 세상을 감싸 안다는 것, 참 성찬 일이다.' 


챕터별 소제목이 이처럼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책을 여태껏 읽어보지 못했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세로로 쓰여진 글을 보면 책의 소재를 파악하고 줄거리를 통해 물레를 돌려 옷을 짜듯이 알아갈 수 있다. 


누구나 가끔씩 인생과 삶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나와 함께 했던 나의 인생과 삶에 대한 결과를 점검해보기 위해 딱 좋은 책이다. 그래서 삶을 향한 기대가 지금의 삶을 흔들리게 하면 서슴없이 기대를 응원으로 바꿀 수 있는 경험들이 가득 들어 있는 책이다. 작가의 경험으로 나의 삶을 실현 전략을 찾았으면 싶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람은 강렬하게 살아야 내일 웃을 수 있는 법이더라.


[덧] 오탈자


190쪽_ 아래에서 5번째 줄, ‘술집었으니’ -> 술집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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