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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Nov 11. 2024

평범하게 살아도 멋진 세상이 될 수 있다

평범한 삶 속에 있더라도 빛나는 삶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살아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뒷이야기가 주변에서 무성하다. 평론가나 전문가 집단의 공적인 치하는 차치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토크는 이랬다.

      

“여기저기서 ‘한강, 한강’ 해서 가수 조용필의 노래를 말하는 줄 알았다.” 


“노벨상 작가의 책 한 권 정도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른 작품이 <채식주의자>였다. 소설 가운데 ‘몽고반점’은 충격이었다. ‘채식’이라는 자연 순수를 예상했는데 빗나가서다. 다른 작품을 읽어볼 생각이 주춤해졌다.” 


“문학은 역시, 그리고 노벨상은 역시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준 것 같다.” 


“한강의 수상 소식은 무명에 가까웠던 가수 임영웅이 평범을 이겨내고 비범한 슈퍼스타가 된 것과 같지 않을까!”

     

한강은 평범한 작가이지 않았나 싶다. 국내 작가들 가운데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가로 이름이 거론된 적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할 때도 노벨문학상까지 여론과 각자 생각의 크기가 확장되지 않았던 것 같고. 그래서 수상 소식에 많이 놀랐다.      


그런데 한강의 그 평범함이 세계적으로 큰일을 내고 말았다. 한강 신드롬은 쉽게 식지 않을 것이다. 한국 문학사적으로 엄청난 일이니 열기가 오래 가는 것이 맞는다. 앞서 평범한 소시민이 쏟아낸 한강 작품에 대한 일갈은 그저 평범한 이들의 가벼운 접근일뿐이다.    

 

넥플리스 오리지널 ‘흑백요리사’의 긍정적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맛에 있어서만큼 고수라는 두 부류, 재야의 고수 흑수저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세프 백수저의 살벌한 경쟁이었다.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에서, 최종 승자는 흑수저 신분으로 도전한 요리사였다. 역시 평범이 비범을 넘어서는 결말이었다.   

   

평범이 위대한 대목이다. 단지 우승으로 비범한 세프가 된다고 해도 평범의 가치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평범한 소시민들이 자주 찾을 수 있는 빕 구르망(가성비 맛집) 식당의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좋겠고.    

 

칠곡할매레퍼 그룹 ‘수니와칠공주’는 또 어떤가. 수니와칠공주는 지난해 8월 경북 칠곡군 지천면에 사는 할머니들이 모여 결성한 평균연령 85세의 8인조 그룹이다. 그들은 뒤늦게 한글을 깨치고 랩에 도전한다. 할머니들이 직접 쓴 시 7편을 랩으로 바꾼 자작곡을 선보였다. 로이터와 AP, 중국 CCTV, 일본 NHK 등 해외 유력매체에서도 할머니들을 취재했다.     


수니와칠공주의 한 명인 서무석(87) 할머니가 지난 10월 15일 별세했다. 서 할머니는 올해 초 림프종 혈액암 진단과 함께 시한부 3개월 판정을 받았지만 가족 외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래퍼로 활동하며 랩을 하고 싶어서였다. 평범이 비범을 넘어선 경우이다. 평범하고 보통, 아니 변변찮던 인생이 비범으로 가는 방향을 제시한 사례이지 싶다.


비슷한 인생은 또 있다. 강원 원주시 신림면 소재 황둔초등학교 창평분교는 학생이 없어 폐쇄됐었다. 하지만 지금의 창평분교는 3년 전부터 할머니들의 예술 창작공간인 ‘할매발전소’가 되어 있다. 8명의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워 쓴 손글씨와 자유롭게 그린 그림액자들이 전시 중이다. 할매발전소는 매년 가을이면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예술과는 멀찍이 떨어져 살아왔던 할머니들이 마을에서 예술 생산의 주체가 되는 사례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산문 ‘기억의 바깥’에서 ‘글쓰기 외의 모든 것을 괄호 속에 넣고 한 단어씩 써간다’라고 했다. 이쯤 되면 평범한 삶이 인생의 전부였던 우리도 무언가로 채울 ‘괄호’ 한 개를 만들어놓아도 되지 않을까싶다. 흑수저 출신 요리사, 래퍼 할머니, 예술하는 할머니들처럼 말이다.  

   

부희령 작가의 산문집 <가장 사적인 평범> 중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평범하게 살아온 덕분에 더 많은 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이 더 많으니까. 이해한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에, 좋았다.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서도, 좋았다.’ 

    

어쩌면 ‘펑범’은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는 휴화산과 같다. 지금은 그냥 달리지 않고 걷고 있기 때문에 쉼처럼 보일 뿐이다. 이 세상에 평범으로 시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태어난다. 아잇적엔 부모의 힘으로 살아가다가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평범이라는 포지션이 수평의 위쪽과 아래쪽으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평범선(線)에 맞닿아있거나 그 아래쪽에서 사는 사람들이 중심이 된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평범은 그야말로 평범이다. 눈을 치켜뜨고 봐도 주변은 비범과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이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평범하다고 무시하고, 평범하다고 무시를 당해서도 안 되는 이유이다. 

    

잘 났다는 사람들은 서로가 더 잘났다며 싸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못났다(겸손)’는 사람은 성실과 근면을 기반으로 노력하며 거친 삶을 헤쳐간다. 평범하지 않으려 하다가는 일이 꼬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평범을 무시하고 비범함과 특별함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평범 사고(思考)의 상승 제어’라고 할 수 있다. 제어시스템이 망가지면 평범을 벗어나려 탈출을 시도하고, 결과는 날개 없는 추락을 가져올 뿐이다.      

평생 마음속에 두어도 좋은 말이 있다. ‘평범은 관심을 가지면 자란다.’ 어쩌면 평범은 철학 부재 시대에 기본철학 같은 것이다. ‘맨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을 건졌다’는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누구든 평범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    

  

사람은 평범을 중심에 놓아야 분주해진다. 평범에서 비범으로 가기 위하여 용기를 낼 수 있어서다. 평범한 삶에 안주(安住)하느냐 도약하느냐!에 대하여 고민도 하게 된다. 그래서 평범은 기준점이자 출발점이다.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만약 평범이 없다면 기준점이 사라진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게 되면 삶에서 노력의 의지는 상실되고, 무엇인가를 하려는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저마다 평범 속에는 비범함이 숨어있다. 평범함이라는 원고지에 서사를 써 내려가다 보면 언젠간 비범한 삶이 되는 법이다.     


어쩌면 평범이라는 것이 들꽃과 같다. 별을 바라보다가 빛이 사라지면 땅 위에 홀로 피어난 이름모를 꽃한테 마음을 주는 것처럼. 그렇지만 별과 꽃처럼 아름다워야 할 현실은 다르다. 평범한 이야기가 가치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평범을 비범으로 위장한다. 부러움과 욕심으로 요행을 바라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비겁해진다. 평범하고 무난한 일상을 무시하면 콤플렉스의 싹이 자라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평범의 일상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고군분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가 평범이 쓰임새를 찾는 순간 비범의 꽃을 피우고 세상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직도 세상은 무명의 평범이 벅차오를 감동을 누른 채 소소하게 지낸다. 알게 모르게 평범이 스쳐가는 날들이 쌓이고 있다. 이러한 날들은 헛되지 않고 특별함의 불씨를 살린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80명의 흑수저 요리사들, 8인조 레퍼 그룹 수니와칠공주, 할매발전소의 할머니 예술가들도 그 불씨가 살아난 것이다. 우리도 이제, 평범한 삶 속에 있더라도 빛나는 삶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살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결코 늦지 않았다.

수니와칠공주가 한 축제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칠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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