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이제부터 우리 두 사람의 인생 모닝콜이다 ……
한 해의 한을 풀기라도 할 듯이 송년 산행에 나섰습니다. 겨울 산에 오르니 차가워 보이는 나무 벤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산객들은 한겨울의 벤치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산길을 내려갔습니다.
벤치는 가뭇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벤치와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빈방이 있음을 알리려 전단지를 붙이는 하숙집의 게슴츠레한 눈빛의 아저씨처럼요.
정상에서 도시를 한참 동안 내려다본 후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벤치한테 다음의 봄을 기다리라는 작별인사라도 할 것을…. 뜬금없이 그런 후회가 밀려 왔습니다. 하지만 벤치의 외로움이 사람의 그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인간의 욕망에 벤치의 무소유를 반추해보며 가던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나 기다림은 일상이요 곧 사랑일테니까요!
인생이란, 찾아 온 시간을 내버리듯 허비하다 지나간 꽁무니에 한숨을 보태주는 것과 같습니다. 눈앞에 떠다니는 행복이 덜 익었다며 바라보다가 옆에 놓인 후회에 눈물을 보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얀 도화지에 뭘 그릴까 생각한 끝에 길어진 회상으로 누런 종이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그것이 인생이고 후회가 인생입니다. 삶의 방법은 큰 줄기를 찾기보다는 작은 가지들을 씨줄 날줄의 인연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기쁜 인연이 있는가 하면 슬픈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25년 마지막 달, 가장 슬프고 가장 가슴이 아팠습니다. 업무 관계로 만났던 후배, 아니 친형제처럼 지내던 동생의 참척(慘慽) 소식이었습니다. 휴대전화의 화면에 표시된 2통의 부재중 전화, 그리고 들어온 문자는 딱 한 글자 ‘참.’ 이었습니다. 고객과 대화를 마치고 전화가 왔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바로 연락했습니다.
“형, ○○장례식장으로 오세요. 택시 타고 얼른 와보세요.” 통화 중 동생이 했던 말은 딱 두 문장이었습니다. 나는 의문이 갔으나 말을 꺼낼 수 없었고,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내내 불안감으로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얼추 짐작이 갔던 지난 일이 생각나서였습니다.
장례식장 출입구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오른쪽 벽면 모니터에 그에게 참척의 아픔을 남기고 떠난 영정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름 옆에 쓰인 만19세라는 숫자가 형언할 수 없는 애통함과 상실감으로 나에게 덮쳐왔습니다.
고인에게 인사하고 나오자 동생은 조문객으로 찾아온 친구들 사이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그의 투명한 물방울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휴지를 한 장 집어 들어 나도 눈물을 닦아 냈습니다.
태풍 같은 슬픔이 치고 들어온 나의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동생에게 쏟아지는 아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동생이 친구들에게 내뱉는 일상의 범주 속 넋두리가 ‘나는 미칠 정도로 괴롭다’는 하소연처럼 들렸습니다. 가끔 무심코 내보이는 동생의 쓴웃음은 고문을 받고 있는 사람의 허탈한 절망감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평소 조사(弔詞) 때면 항상 정호승 시인의 말을 인용해 위로를 건네곤 했었습니다. ‘천년을 살아도 한 번은 이별한다’. 이번엔 달랐습니다. 도저히 위로를 건넬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사다난이라고 해도 그만그만했던 올 한 해의 마무리 시점에 가장 안타깝고 슬픈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동생을 보면 자꾸 나오는 긴 한 숨, 가슴을 파고드는 슬픔에 나는 울 수 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현실이 도달되지 않아도 동생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려고 나는 노력 중입니다. 곁에서 동생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분주해지면 나는 동생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지금 뭐해?”
세상의 어둠은 언젠가는 빛으로 거둬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두터운 솜이불이 슬픔 덩어리한테 내리는 빛을 덮어버린다고 해도, 나는 빛을 찾아낼 것입니다. 그러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결국 세상은, 또 세월은, 새어 나오는 빛을 막을 수 없습니다. 또 한 해가 떠나고 새해가 밝아오듯이요.
한 해의 시작이 열리고, 또 시간이 지나 한 해의 끝에 도달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시간의 뒷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해가 새해라고 다가오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슬픔이 빛으로 거둬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동생한테도 빛의 온도가 슬픔의 눈물을 말려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태양의 비춰짐이 어느 한 곳 만이 아니라 그늘지어진 모든 곳에 비춰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삶이 타인의 삶에 티끌 만한 크기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세월입니다. 삶은 냉온의 리얼리즘 속에서 숨을 쉬며, 뜀을 뛰며, 쉼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다시 주어진 한 해가 우리가 갈망하는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삶이든 꿈이든요!
송년과 새해가 겹쳐지는 시기가 되면 세상은 유난히 휘황찬란해집니다. 마치 묵은 해를 꽃상여에 태워 보내고, 또 찬란한 불빛들은 새해를 맞이하려는 조명처럼요.
무카라미 하루키가 말했습니다. ‘완벽한 문장이란 없듯이 완벽한 절망도 없다’라고. 나는 이 말을 여전히 소주병을 앞에 두고 힘들어하는 동생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동생아, 완벽한 절망이란 없다, 이 말이 이제부터 우리 두 사람의 인생 모닝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