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절창>을 읽은 후 짧은 투정…

여전히 뇌 속에서는 글자들이 짝을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by 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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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절창>을 읽으면서 ‘서사‘의 이해가 참 싶지 않다고 느끼면서 나를 탓했다. 내용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도서, 생소한 단어, 글의 위상(또는 수준)을 높여 줄거라 착각할 수 있는 배배 꼰 표현 등은 수차례에 걸쳐 구간을 반복해 읽거나 백과사전 - 요즘은 챗지피티나 제미나이 - 이 없으면 해석 또는 이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내 자아비판을 해가며 얼른 책 읽기를 마치려 머리를 독려하고 눈을 독촉했다.


책이라는 것은, 전체 스토리는 원가와 관련이 있고, 플롯은 책을 읽는 시간에게 견적서를 내미는 법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절창은 원가 손실과 과도한 숫자의 견적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 작가도 눈치를 챘지 않았나 싶다. 298쪽의 내용이다.



나는 독서교실에서 아이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읽어야만 했을 때 ‘선생님 이 책 너무 이상해요‘와 같이 불평하는 걸 숱하게 들었으므로, 발신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던 처음에는 옛날 폐업한 학원의 수강생이 새 학원에 가서 공부하다가 나한테로 메시지를 잘못 보냈나 하고 방향을 좀 착각했습니다. 숱한 정도가 아니라 ’선생님 이거 무슨 소린지-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지, 어떤 교훈을 주는지, 주인공들은 왜 이러는 것이며 이걸 읽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다음으로 자주 나온 말이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척수반사적으로 대답했던 시절을 떠올렸지요. 너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건 귀담아들어줄 테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그 모든 걸 통틀어 단순히 이상하다고만 해버리면 안 된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잠을 줄여가며 늦은 저녁이나 이른 아침 시간에 읽었다는 것이고, 책을 구매하지 않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말판 신문에 나온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소설이 상위 자리를 차지했고, 최근 작가가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순전히 나만의 문제‘이고 ‘수준 낮은 독자의 작품에 대한 오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새벽에 번개 처럼 일어나 책의 남은 부분을 모두 읽고 접한 빵돌이의 주일 아침식사는 그나마 삐딱한 감정의 미련을 쫒아내기에 충분했다. 여전히 뇌 속에서 글자들이 짝을 맞추기 위해 왁자지껄 시끌벅적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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