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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Jun 23. 2021

멋진 꼰대

철학적이고 고급적인 언사로 큰 어른이 돼야귀엽고 사랑스러운 꼰대...

한때 썰렁한 개그를 지칭하는 ‘아재개그’가 유행이었다. 뭐, 이런 식이다. 가장 억울한 도형은? ‘원통’. 신발이 화나면? ‘신발끈’.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중학교는? ‘로딩중’. 아몬드가 죽으면? ‘다이아몬드’. 세상에서 가장 야한 채소는? ‘버섯’. 하느님이 버스에서 내리면? ‘신내림’. 스님도 따라 내리면? ‘중도하차’. 반성문을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글로벌’. 바람이 귀엽게 부는 동네는? ‘분당’. 야구선수가 왕에게 공을 던지면서 뭐라 했을까? ‘송구하옵니다’.

세대 차이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해서 ‘아재’라는 단어를 쓴다. 일반적으로 아재와 꼰대는 다르게 구별한다. 한 대기업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아재의 행동은 이렇다.

자기 말이 무조건 옳다며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 대답 가운데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훈계하는 것, 나이가 나보다 많다고 무조건 반말하는 것, 성형 여부나 애인 유무 등 지나치게 사적인 질문을 하는 것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상적인 아재의 행동으로는 “멘토와 같은 조언자가 되고,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는 사람”이라고 응답했다.

‘아재’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 단어는 바로 ‘꼰대’다. 하지만 아재 보다 꼰대가 더 인간 파괴적이다. 꼰대는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는, 마치 평행선을 달리는 존재와 같다. 독불장군이다. 친근하면서 다소 측은한 이미지가 담겨 있는 ‘아재’에 비해 대화를 나누면서 오히려 친근함이 사리지고, 서로간 격차 해소가 아니라 간격이 더 벌어진다. 바로 ‘꼰대’다.

충고와 관련한 멘토와 꼰대의 차이점은 어떨까.

멘토는 요청이 들어오면 조언하고, 꼰대는 시도 때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한다.

멘토는 미래에 대하여 말하지만 꼰대는 과거만 떠벌린다.

화법에서도 멘토는 자신의 실패 사례까지 소개한다. 그러나 꼰대는 “내가 왕년에는∼”하면서 성공 신화만 말한다. 소위 '라떼'다.

‘꼰대’라는 해석에는 비합리적이고 비호감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색칠돼있다. 꼰대의 사전적 의미는, 1.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2.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다. 기성세대들이 꼰대로 칭해진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꼰대 속에는 포함돼 있다.

꼰대의 어원을 고전적으로 들춰보면, 나이가 들어 주름이 많다는 의미로 번데기의 경상도 사투리인 ‘꼰데기’가 어원이라는 주장이 있다. 또 프랑스어로 백작인 ‘콩테’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일제 강점기 이완용 등 친일파가 자신을 ‘꼰대’라고 자랑스럽게 칭했다는 얘기도 있다. 모두 좋지 않는 의미가 담겼다.

“내가 꼰대가 다 됐구나!” 싶을 때가 있다. 먼저 남한테 의견을 말해보라 해놓고는 나중에 보면 자기 말만 하고 있다. 둘째, 어떤 언어와 행동을 보고는 ‘근데 말야∼’하면서 토를 달고 있다. 셋째, 주변에 사람들은 안 보이고 혼자 떠돌고 있는 느낌이 들 때다.

최근의 일이다. 이비인후과에서 수술을 앞두고 주치의 소견서를 받으러 앞서 다니고 있던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2호선 교대역에서 환승했다. 한 개 역을 지나니 빈자리가 생겼다. 좌우를 살피고는 편한 마음으로 앉았다. 다음 역에서 노년의 부부가 타셨다. 할머니는 앞쪽 좌석에 앉으셨다.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엉거주춤 서 계셨다.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르신이 앉으셨다. 그 분 앞에 선 채 주변을 둘러보니 양보한 자리 양쪽에는 2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젊은 청춘들이 앉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속으로 한마디 했다. “근데 말야. 꽤씸한지고!” 이내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고 있구나.’

사실 꼰대들은 안타깝고 서러운 존재다. 꼰대가 아니라고 우기면 더 꼰대라는 손가락질이 자신을 향해 온다. 그렇기에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꼰대가 되는 성향은 이렇다. 변화에 무감각하거나 둔감하다. 권위적이다. 이기적이다. 마음속으로 꼰대라고 불렀던 아버지를 닮았다.

사실 꼰대들은 자신의 꼰대화(化)를 인식하지 못한다. 언제, 어떻게 꼰대가 됐지는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새 꼰대가 주위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아예 꼰대라는 사실 마저 모르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꼰대의 나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질곡의 꼰대 삶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詩)가 있다.

‘청춘이란 인생의 한 때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렬이다. 청춘은 인생이라는 깊은 샘의 신선함이다./ 청춘이란 안일한 삶 넘어의 모험을 통해 두려움으로 이겨낸 용기가 지배함을 말한다. 때로는 스무 살의 젊음보다 예순의 나이가 더 청춘일 때가 있다. 어느 누구도 나이 때문에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과 꿈의 단절이 우리를 늙게 만든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이 없다면 영혼에 주름이 진다. 근심, 공포, 자기불신은 마음을 굴복시키고 정신을 티끌만하게 퇴보시킨다./ 예순이든 열여섯 살이든 인간의 가슴 속에는 누구나 경이로움의 유혹과 어린아이처럼 변함없는 미지에 대한 욕구, 인생을 살아가는 기쁨이 있다. 그리고 너와 나의 가슴 속엔 보이지 않는 우편함 하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응원, 용기와 힘의 메시지를 받는 한 당신은 청춘으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안테나를 끊어 영혼에 냉소적인 눈들이 쌓이고 비관을 일삼는 얼음에 갇힌다면 스무 살의 젊음일지라도 당신은 늙고야 만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기쁨과 희망의 물결을 잡고 있는 한 당신은 여든의 청춘으로 남을 희망이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감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세월의 흐름은 ‘꼰대’에 이르는 치명적인 변곡점이 된다. 그러면서 나이 값, 소위 ‘주변으로부터 존경’이라는 가치를 추가하고 싶어 한다. 존경의 과업을 앞에 두고 있는 꼰대는, 그러나 권위적이고, 강압적이고, 단정(斷定)적이고, 훈계하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독단적인 사람이 돼 있다. 언젠가, 어느덧.

많은 사람들이 꼰대질을 하게 되는 것은 자존감이 낮은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위압적이거나 무례하게 말하면 남들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자꾸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창의리더십센터에서 201명의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성별이나 직위와 상관없이 CEO의 80%가 꼰대 타입의 직원을 싫어한다고 답했다. 67%는 커리어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꼰대의 6하 원칙이다. Who(내가 누군지 알아?), What(뭘 안다고.), Where(어딜 감히!), When(왕년에는 말야.), How(어떻게 나한테!), Why(내가 그걸 왜?). 살아 온 세월의 경험과 연륜은 정신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자기 오류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진짜 어른의 모습을 격렬하게 호응하게 하는 것, 바로 소통의 마음이다. 소통 가능한 어른은 존경의 가치가 스스로 발굴된다.

이제 “나는 다 안다”가 아니라 “나는 아는 것이 많지 않다”로, “나는 늘 옳다” 보다는 ‘주장이나 의견을 응원해주는’ 멋진 꼰대가 되어야 한다. 단정한 매무새와 온화한 말투, 철학적이고 고급적인 언사로 큰 어른이 되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꼰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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