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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Jan 12. 2022

누구나 안전기지 하나 쯤은 있어야…

안전기지가 없다면 세상을 탐구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아 예민한 상태가 돼

세월의 흐름이 거침없다. 새해 첫 달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시간을 꽁꽁 묶을 수만 있다면 애가 타는 것을 줄일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야 정체되지 않는 삶이 될테니 수용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순리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진리다. 세상을 거스릴 수 없는 것 역시 순리다.


순리(順理). 순한 이치나 도리, 또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 을 의미한다. 순리의 삶이 옳지만, 순리를 지키는 것까지 당연하게 따라오지는 않는다. 순리대로 살아간다면 자신을 비롯해 세상의 모습들이 별처럼 빛낱테지만 말이다. 


욕심이 세상을 망치고, 사람을 등지게 한다. 잊고 있었던 법정 스님의 말을 되새긴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애초의 그 하나 마저도 잃게 된다.” 욕심이 세상과 자신을 해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결국 빈손이라는 것만 다시 깨닫게 될 뿐인데도.


겨울에 새하얀 눈이, 봄에는 찬란한 신록과 아름다운 꽃들이, 온 세상을 덮기 마련이다. 바로 세상의 힘이다. 사람에게도 힘이 있다. 낙관의 힘, 긍정의 힘, 자신감, 열정과 꿈, 그리고 사랑의 힘. 


사람을 만나 행복할 수 있는 건 사랑의 힘이 있다는 거다. 그 외에도 세상을 착하게 바라보는 사람, 긍정과 일에 대한 열정의 에너지 또한 물들어 있는 사람, 그들은 좋아하게 되기 마련이다. 자신감을 갖고 꿈을 꾸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다. 


여기에 더해 만나면 언제나 안정감과 아늑함을 주는 사람도 좋다. 넓은 가슴을 내어주는 사람이라서 좋다. 무엇보다 해장국 같은 사람 말이다.


술 한잔 하고 나서 술동지를 다시 만나 거하게 들이키는 속풀이 해장국. 술꾼들에게 해장국 한 그릇은 위장에 안전한 평화를 가져다 준다. 그래서 해장국 찬가를 불렀던 적이 있다. 숙취의 안전지대는 해장국이다.


『마음처럼 잘 풀리는 세상이었으면…. 돌면서 꼬인다 해도 달래면 아득하던 시련의 끝이 눈앞으로 다가왔으면…. 사랑과 희망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스멀거리는 세상살이는 술자리에서 툴툴툴 털어냈으면…. 이런 삶을 꿈꾸어 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은, 나 하늘로 돌아갈 때(歸天)면 소풍 나온 세상살이가 끝이라 했다. 술로서 인생사를 다스렸던 그. 말년에는 막걸리 한두 잔 걸치면서 세상 소풍의 목마름을 달랬다. 단골 술집이 바뀌자 부인이 물었다. “새 술집주인은 젊은 여인인가 보네요?” 그는 대꾸했다. “문디 가시나. 그 집 술잔이 더 크다 아이가.” 더 큰 잔에 인생을 담았던 그는 삶의 내상(內傷)을 해장국으로 달래지 않았을까.


쉽지만은 않는 세상, 녹록치않는 현실 속에서 상처받은 우리의 속을 달래주는 해장국이 그립다. 헐어서 쓰라린 위벽과 마음의 염증까지 달래주는, 해장국은 우리네 삶 속에서 값싼 치료제다. 은근하게 삶의 쓰라림을 감싸주고,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엷게나마 덮어주고, 깊은 맛으로 사람들 속을 달래주는 해장국. 뚝배기를 타고 오르는 모락모락 하얀 김처럼, 추운 겨울 사랑 꽃 같은 해장국을 맛보고 싶다.』

   

나는 ‘안전기지(secure base)’라는 용어가 있다는 것을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읽다가 알게 됐다. 어렸을 때 부모, 특히 엄마가 안전기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이론에 근거한다. 


생애 초기에 어머니의 적절한 돌봄 행동에 의해서 아이가 갖게 되는 안정적 애착이 자신과 타인,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내적인 작동모델을 만든다는 것이다.


존 볼비는 ‘낯선 상황 실험’을 시도했다. 14개월 된 아기와 엄마를 방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아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한다. 엄마가 조용히 방을 나가면 아기는 패닉 상태에 빠지고 장난감에 더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엄마를 찾으려고 운다. 엄마가 다시 들어오면 안아달라고 한 뒤 안정을 되찾으면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아기는 엄마에게 애착이 형성되어 있고, 엄마는 아이를 위한 안전기지 역할을 한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당시 아홉 살짜리 막내 아들 녀석은 영화를 참 좋아했다. 취향의 중심에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어린 나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혈 팬이었다. 그 녀석은 12살 이하 관람가 영화도 즐겼다.


온 가족이 슈퍼맨 시리즈를 보러 갔었다. 영웅의 모습으로 악당과 싸우는 장면에 아들녀석은 감동을 받은 듯 했다.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필름은 쉬지 않고 잘도 돌아갔다. 슈퍼맨이 숙적인 악당 렉스 루터(케빈 스페이시)의 무력화 계책에 말려들어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스토리로 볼 때 최대 위기였다. 극장 안은 숨죽이듯 조용했다. 아마 관객들은 이후 전개될 상황들을 상상하면서 불멸의 슈퍼맨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빠, 슈퍼맨 죽는 거야?” 아들 녀석이 걱정 어린 투로 말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한 극장 안. 아들 녀석의 말에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절대 죽지 않으리라는 아들 녀석의 신념이 깨질 듯 슈퍼맨이 곧 죽을 것 같았던 모양이다. 극장 밖으로 나오면서 아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빠, 사람이 진짜 슈퍼맨이 될 수 있어요?” 

“글쎄다.” 녀석의 꿈을 꺾을 수 없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들 녀석은 영화 속에서 슈퍼맨의 위기를 보고는 슈퍼맨도 사람인 듯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슈퍼맨을 원하는 세상이다. 아내는 가끔 슈퍼맨 같은 남편을 원한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슈퍼맨처럼, 무거운 짐을 들 때 슈퍼맨처럼, 아플 때도 지구를 거꾸로 돌려 고통을 잠재워주는 슈퍼맨처럼, 사랑을 할 때도 슈퍼맨처럼…. 가끔은 나도 아내가 슈퍼맨이 돼주길 원한다. 뭐든 알아서 해주는 슈퍼맨같이…. 사람들은 바로 불사조 슈퍼맨 같은 안전기지를 원하는 것이다. 슈퍼맨처럼 탄탄한 안전기지를 말이다. 


로키산맥 해발 3천 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이라는 지대가 있다. 이곳에 있는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이지만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휘하며 지낸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고 있는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나무한테는 무릎을 꿇는 것이 비굴이 아니라 생을 연장하기 위한 안전기지가 되는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는 “안전기지가 없다면 세상을 탐구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아 늘 예민한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인생의 안전기지 하나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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