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통 Jan 18. 2022

거리 기행

수채화식의 거리 모습들은 나의 내 소유가 될 것이다... 봄이 기다려진다

1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무얼 찾고 있는지 

뭐라 말하려 해도 

기억하려 하여도 

허한 눈길만이 되돌아와요.


지난 96년 1월 훌쩍 하늘나라로 떠난 유명 가수 김광석 씨가 93년 발표한 노래 ‘거리에서’의 가사다. 생뚱맞게 무슨 노래 가사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다. 노래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니 참아주시길.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간혹 내 뇌에 탄력이 생기는 느낌도 드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 무언가를 생각할 때는 거리를 거닐곤 한다. 노래 가사처럼 무얼 찾기 위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된 것은 이 곡을 내 것으로 완벽하게(?) 만든 후쯤 될까?

일년 전쯤, 신촌 풍물 거리에서 횡단보도에 서 있었을 때였다. 세상 살아가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가 내게 들려 왔다. 미디어 보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살아 있다.

“이 수십 송이 장미꽃을 엄마 아빠로부터 받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 장미꽃은 누군가가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햇빛을 들게 해 주었으니 내게 와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거잖아. 나도 부모님께서 주신 물과 빛 덕분에 졸업은 했는데, 여전히 나 자신을 자랑할 만한 곳을 찾지 못했어. 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있다구.”

근처 대학을 졸업함 직한 그 여학생 품안의 장미꽃. 꽃이 아니라 가시가 되어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는 표현 같았다. 그녀를 쳐다 보면서 조용히 얘기를 듣고 있던 그녀의 남자친구가 가만히 손을 들었다. 그리고 여자 친구의 어깨를 감싸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2

거리에 짙은 어둠이 낙엽 처럼 쌓이고 

차가운 바람만이 나의 곁을 스치면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옷깃을 세워 걸으며 웃음 지려 하여도 

떠나가던 그대의 모습 보일 것 같아 

다시 돌아보며 눈물 흘려요


거리를 거닐 때면 가슴 아픈 생각들에 빠져든다. 김광석 처럼 세상을 일찍 떠난 나의 누이 생각도 그 일종(一種) 이다. 이 거리 저 거리를 걸으면서 누이가 오래 전에 이 길을 걷지는 않았을까 하며 누이의 발자국을 찾아 본다.

짙은 색의 아스팔트나 회색의 보도블럭에서는 발자국을 찾을 수 없었다. 비가 내려도 그것은 성수(聖水)가 아니었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아스팔트를 밟는다 해도 감촉만 다를 뿐 누이와의 부딪힘이 될 수 없다.

“100일 이상 계속되는 단식투쟁이 가져다 주는 결과는 죽음이거나 목표달성 이겠지. 산다는 것은 살아있음에 행복한 거라고 어느 노(老) 스님이 말씀하셨거늘. 목숨을 담보로 도룡룡을 구하기 위한 것은 그 스님의 과보가 아니었을까요?” 오래 전 삼성동 봉은사 앞 길을 지날 때 들려왔던 얘기다.

“한 목숨을 내 던진 투쟁에서 ‘딸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외쳤던 늙은 노모의 마음에는 어떤 상처를 주었을까? 수 십년 전 이십 대의 누이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외쳤던 내 어머니 처럼…” 

그 날 60이 채 안된 나의 어머니는 죽은 누이의 영정을 붙잡고 이렇게 외쳤다. “내가 대신 갔어야 하는데, 너 대신 이 년이 먼저 죽었어야 했는데….” 

여승의 목숨 건 단식 결행은 결국 성공했다. 여승의 목숨으로 정부 정책은 바뀌어질 처지이고…. 그러나 정부도 국민도 말이 없다. 2조여 원의 국고가 날라가도 목숨 앞에서 침묵만 흐르고 있다.


3

그리운 그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머나먼 그곳으로 떠나 버린 후 

사랑의 슬픈 추억은 소리없이 흩어져 이젠 그대 모습도 

함께 나눈 사랑도 더딘 시간 속에 잊혀져 가요


여의섬(汝矣島)의 동쪽을 걸었다. 여전히 찬 바람이 뺨을 스친다. 아직도 추위 걱정에 근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 겨울 동장군이 영원의 계절일 수만은 없을게다. 

요즘, 추위를 강 건너 마을의 일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이 곳에 있다.

마침 연중 행사처럼 모였다가 흩어지는 무리들. 국회의사당의 풍경은 여전히 멋지지 않다. 민의를 대변하기 보다는 특수적 이익에 더 목숨을 걸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젊음 들이 피를 뿌릴 때 그 안에 있던 이들에게서마저 당시의 눈 빛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들의 활동에서 통쾌함과 시원함이 따라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더욱 생생하게 듣기 위한 나의 노력도 예서 접어야 하나 보다.

사랑의 슬픈 추억이 잊혀져 가듯, 자신의 떳떳했던 과거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그네들에게 신뢰감도 기대감도 사라지려 한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화려한 쇼핑 거리를 걷다 보면 쇼윈도는 이른 봄인데, 거리는 여전히 한 겨울이다. 대한을 앞두고 추위는 더해지고 있다. 참고 견디면 이제 곧 우리에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남도의 꽃 소식이 들려오겠지만, 아직 이른 감이 든다. 

나의 거리 기행은 겨울이 지나 봄이 와도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거리 기행의 방법만큼은 바꿨다. 드로잉북을 옆에 끼고 나서기로 했다. 이제는 거리에 흩뿌려지는 소리뿐 아니라 수채화식의 거리 모습들도 내 소유가 될 것이다. 내 글발이 무르익을 무렵 나만의 거리 기행문도 써 볼 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구석진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