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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Mar 01. 2022

<PD가 된 땅끝 소년>을 읽고…

고향은 걸작품처럼 가까이에 걸어두고 싶은 법이다

나의 고향은 해남 땅끝 마을이다. 바다가 있는 곳이다. 바다를 등지고  팔을 벌려 대륙을 향해 포효할  있는 반도의 가장 끝이다.  책은 나처럼 땅끝 마을이 고향인 작가의 소년시절 이야기다.


작가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주고~’. 사실 책을 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해남 땅끝에서 보냈던 소년시절의 향수를 준다니, 신문기사를 읽은 후 바로 책을 주문했다. 오늘 책이 도착하자 읽기 시작해 정확히 7시간 만에 마지막 책을 덮었다. 몇 년이라는 나이 차가 있고, 바다소년이었던 나와 다르게 작가는 산골소년이라는 공간적 차이는 있다. 하지만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던 아날로그 시절의 이야기들은 시골 소년들의 당시 상처에 빨간약을 발라주기에 충분했다. 많은 경험들은 ‘그 때 그 시절’로 연결된 소통이라 나는 고개를 사정없이 끄덕거릴 수 있었다.


나는 작가만큼 마음 속에 간직한 땅끝마을에서의 추억은 많지 않다. 고향의 향수를 떠오르게 하는 사건사고도 거의 없다. 일찍이 서울로 전학을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부모세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엄마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그럼에도 자식에게 만큼은 거칠고 험한 삶을 보태주려 하지 않았다. 이야기 속 작가의 어린 시절을 보면 가난했던 농촌형 노동의 강도가 결코 약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힘들고 마음 아팠던 생활의 경험들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나에게는 유난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하나 있다. 고향 마을에는 바다로 흘러가는 냇가가 있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피라미를 잡고 멱도 감고 했다. 어느 날, 해가 질 무렵 물놀이를 마치고 작은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나의 몸은 거꾸로 뒤집어 지면서 머리가 땅으로 향했다. 아니 내가 바다로 던져질 듯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난생 처음 느껴본 ‘비행기 타기’ 같았기 때문이다. 한껏 즐기는 마음을 품으면서도 나는 ‘누구지? 아부지가 살아 오셨나?’,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종종 그 때의 공중을 날았던 기분에 빠져들곤 한다. 그리고 ‘그때 정말 누구였을까?’ 라는 생각으로 연결시킨다. 그 날의 경험을 엄마한테 이야기했을 때 “아부지 친구셨을거다!”라는 기억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도 그 때 그 분을 뵙고 싶을 때가 있다. 아부지를 향한 강한 그리움 처럼. 고향의 향수에 빠져 한 순간에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더욱 그렇다.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땅끝 해남은 어린 시절의 나를 단련시킨 곳이고, 살아가면서 시련이 닥칠 때면 이겨낼 힘을 주었던 곳이다. 또 앞으로도 언제든 내가 안길 수 있는 넓은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다.’


굳이 땅끝이 고향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든, 고향은 걸작품처럼 가까이에 걸어두고 싶은 법이다. 어떤 사람이 됐다는 결과를 제목에 걸어놓은 작가의 옛날 이야기가 나는 많이 부럽다. 정작 나는 ‘무어가 이라고 적을 만한 타이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땅끝 소년이라는 정의는  몫으로 소유할  있다. 나의 고향이  멋진 땅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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