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파타고니아'는 나에게 조금은 낯선 브랜드였다. 어느 순간 파타고니아 로고가 박힌 티셔츠와 후리스를 입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파타고니아를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 브랜드는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의 교복이라고 불릴 정도로 '힙'했으며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브랜드의 대표주자였다.
올해에는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더니, 이 두꺼운 책을 주변에서 읽고 너무 좋았다며 계속 소장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지인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주변 지인 중에는 기획 업무를 하거나 브랜드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
대체 어떤 책이기에 그렇게 칭찬하는 것일지 궁금증을 안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에 그어지는 밑줄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점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기획자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제품을 기획할 때의 원칙'이라든지 '디자인과 제품 그 사이의 타협점', '일과 삶에 대한 태도' 등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었고, 그 모호하고도 어려운 고민들에 대해 확고하게 잡혀 있는 신념과 원칙들이 돋보였다.
우리 마음속의 최우선은 항상 품질이었다. 적절치 못한 도구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이 우리 제품의 최대 고객이었으므로 죽음에 이르는 그 사람이 우리가 될 수 있었다. -p.53
사명 선언의 첫 부분인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파타고니아의 존재의 이유이며 사업 철학의 초석이다. 최고의 품질을 가진 제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애초에 우리가 사업을 시작한 이유였다. -p.141
파타고니아는 품질을 우선으로 한다. 여기에 타협은 없다! (...) 물론 정시 배송이나 합리적인 가격을 포기하고 품질을 선택했다는 것이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다른 두 목표를 날려 버리지 말고 세 가지 모두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품질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p.205
제품이 우리의 기대에 부합할 때 고객으로서 제품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렇지 못할 때 역시 고객으로서 화를 낸다. -p.271
이본 쉬나드(파타고니아의 창립자이자 이 책의 저자)는 모든 제품을 기획할 때 오직 '품질'이라는 확고한 기준에 집중한다. 기획자라면 이렇게 명확한 기준을 정하고 모든 경우의 수에도 이것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공감할 것이다.
제품을 기획할 때 사실 어느 하나만을 최우선으로 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가격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부분을 포기하기도 하고, 마케팅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기도 하며,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 데에 포커스를 맞춰 기획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품질'이다. 아무리 마케팅을 잘해도 제품의 품질이 좋지 않다면 지속될 수 없고, 반대로 품질이 좋은 제품은 굳이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잘 팔리는 제품이 되기도 한다. 창업자들 역시 초기에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제품을 출시할 때 원가를 싸게 절감해서 '가격'으로만 경쟁하려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결국 시장은 '누가 더 좋은 품질을 만드느냐'에 달린 품질 경쟁이다. 물론 품질에 대한 정의는 주관적인 것이며, 각 업태에 따라 품질의 정의를 스스로 정해 보면 좋을 것이다. 나 역시 이 부분을 기획자 입장에만 있다 보니 간과하고는 하는데, 다시 한번 이 책을 통해 되새기게 된다. '나라면 이 제품을 살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는 것을.
산업 디자인의 첫 번째 수칙은 물건의 기능이 디자인과 소재를 결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반드시 기능이 형태를 좌우해야 한다. -p.145
기능적 필요를 토대로 디자인하면 과정에 집중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반면 진지한 기능적 필요가 존재하지 않을 때는 보기에는 그럴듯해도 제품 라인에 포함시켜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 즉 "누가 이 제품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려운 제품이 나온다. -p.146
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의 디자인이다. -p. 155
평소에도 나는 상품기획자로서 디자인에 얼마나 관여해야 하는 것인지, 또 얼마나 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곤 했다. 상품기획자가 디자인에 너무 간섭하게 되면 디자인 본연의 감각과 영역을 해치는 것 같았고, 디자인에 너무 포인트를 맞추게 되면 제품 본연의 특성이나 고객 수요와는 는 조금 멀어진 디자인이 나오는 것 같았다. 대체 얼마나 관여를 해야 하는 것이고 제품에 디자인의 역할과 정도는 어느 선이어야 하는 것일지 매번 헷갈렸다.
이본 쉬나드는 디자인에 대해서도 본인만의 명확한 기준과 답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Form Follows Function(FFF).' 기능이 형태를 좌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품 본질 자체에 더 관심을 두고 디자인은 제품의 기능적 필요를 결정한 후에 결정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본 쉬나드가 디자인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항상 단순하면서도 글로벌한 디자인에 중점을 두고 파타고니아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에 파타고니아만의 디자인 원칙을 지독하게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나 역시 기능이 형태를 좌우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는 동시에 브랜드 이미지 확립에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길 것을 다짐했다.
일은 늘 즐거워야 한다는 점이다. 일터로 오는 길에는 신이 나서 한 번에 두 칸씩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올라야 한다.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입고 심지어는 맨발로 일하는 동료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 유연한 근무로 파도가 좋을 때는 서핑을 하고 함박눈이 내리면 스키를 타고 아이가 아플 때는 집에 머물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일과 놀이와 가족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야 한다. -p.85
답장을 쓸, 전화를 할, 주간 보고서를 작성할, 책상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혹은 "너무 바빴습니다". 이것들은 솔직하지 못한 변명이다. 숨은 뜻은 그 일이 우선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에 처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원하는 것이라면 하게 되어 있다. -p.197
삶의 기술에 통달한 사람은 일과 놀이, 노동과 휴식, 몸과 마음, 훈련과 오락을 뚜렷이 구분하지 않는다. -p.270
기억하라. 일은 재밌어야 한다. 우리는 풍성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사는 직원들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 -p.278
우리는 일단 결단을 내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믿음을 가지면 셔츠든, 카탈로그든, 매장 디스플레이든, 컴퓨터 프로그램이든 가능한 최고의 품질로 만들어 내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는 사람을 원한다. -p.286
일과 삶에 대한 고민을 늘 하곤 한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유난히 밑줄이 많았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어떤 직원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이본 쉬나드는 이러한 나에게 답이라도 주듯 마음을 콕콕 찌르는 문장을 뱉어냈다. 그래 일은 재밌어야지, 최고를 만들어내는 것에 믿음을 다하면서도 나의 삶 역시도 풍성하게 만드는 것 역시 놓치지 말아야지.
환경에 대한 신념과 노력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줄 알았던 이 책은 뜻밖에 나에게 많은 해답을 주었다. 환경에 대한 철학을 지켜왔던 부분도 배울 점이 많고 좋았지만, 나는 색다르게 이 책이 기획자들이 평소에 고민하던 부분들을 본인의 경험을 통해서 짚어내 주는 지침서 같은 책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표지까지 이뻐 소장하기 너무 좋은 책!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에 등장하는 파타고니아는 너무 멋진 브랜드이지만 좀 더 경험하면서 꾸준히 지켜보기로 하며, 책에서 좋았던 몇 가지 문장을 덧붙인다.
어떤 것이든 완벽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무엇 하나 걸치지 않은 적나라한 상태에 이를 때에 달성된다. 선(禪)을 통해 나는 단순해지느 법을 배웠다. 단순해지는 것이 가장 풍성한 결과를 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p.53
위험한 스포츠를 하는 데 따르는 스트레스가 자아 발전을 이끄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성장하려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주어야 한다. 우리 회사는 위기가 있을 때마다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다. -p.295
모든 일이 잘 돌아갈 때, 누구나 느긋하고, 게으르고, 행복한 때에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 (...) "기분 좋은 평화와 안정 속에서 인간의 영혼은 얼마나 빨리 죽어 가는지." (...) "사람은 느긋하게 태어나서 바쁘게 죽어 간다." -p.296
글을 쓰고 생각을 담은 글쓰기 모임,
'쓰담' 멤버로 함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