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좋아하는 일 하며 바쁘게 사는 일이 기쁘면서도 가끔은 일 없이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는 일을 하다보니 아직 훌쩍 떠나지를 못 하고 있다. 막상 떠나려 하면 못 할 것도 없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호주도 가고 싶고 미국도 캐나다도 가고 싶고 백두산도 가고싶고 나트랑도 가고 싶고 생트페테르부르크도 에트루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도 가고 싶고 이탈리아도 가고싶고 포르투칼도 가고 싶고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체코 폴란드 튀르키에도 가고 싶고 프랑스 스페인도 가고 싶고 페루도 가고 싶고 콜롬비아 에콰도르도 가고 싶고....
당장 떠나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보니 막상 어디로 갈지 정하기도 어렵고....그냥 TV에서 방송하는 여행지 소개프로그램 보면서 맘만 설렌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사실 여행도 많이 다녀본 사람이 다니는 것 같다. 달력 펼쳐 날짜 체크하고 여행 어플 열어 비행기값 숙소비 렌트카비 까지 검색해보지만 최종결정을 하기도 전에 포기한다.
왜 나는 여행 앞에서 망설이는가? 사실 쉽사리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명확히 잘 알고 있다. 아직은 여행의 즐거움이 내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불쑥불쑥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마치 매일 오이지 무침에 김치찌개로 밥을 먹다가 가끔 돈까스를 먹고싶다든가 초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일 뿐. 그렇게 명동 돈까스가 먹고 싶다가도 막상 식사시간이 되면 김치찌개와 오이지무침을 먹으면서 즐거워 하는 것과 같다.
사실 내게는 멀리 여행을 가기 위해 돈과 시간과 열정을 쓰는 것 보다는 그저 내가 존재하는 여기서 행복하고 내가 하는 일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이 더 크다. 여행은 내 인생 우선 순위로 보면 멀찍하게 떨어져 있다.
아내와. 두 아들. 내 가족. 그리고 글쓰기와 강의. 친구들과의 소소한 대화 그런 것들 보다 뒤에 음식. 여행. 옷 그런 것들이 섞여서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외식도 자주 하지 않으며 옷 사는 일도 즐겨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내가 쉽사리 여행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 포기한 건 아니니까. 언젠간 꼭 가고 싶다고 각오는 하고 있으니 가는 그날을 생각하며 오늘은 내 일에 충실하며 행복해진다. 행복을 위해 여행은 필수조건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