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무념
무념이란 무엇인가. 단어가 가진 한자를 그대로 직독직해 한다면, 無(없을 무) 와, 念(생각할 념) 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생각이 없음” 정도로 해석이 된다. 아마 이 해석을 본 독자들은 고개를 갸웃 할 것이다. 살아오면서 tv, sns, 등의 매체를 접해오며, “무념무상”이라는 단어를 들어왔고, 이것이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가치 중 하나란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인데, 불교라는 대단한 종교에서 추구하는 것이 “아무 생각 없음”이라고? 그래서 부처들의 보편적 이미지는 무슨 일이 발생해도 격한 감정이란게 없다는 듯 평온함을 유지하는 존재처럼 소비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아무리 불교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다고 해도, 이 해석이 이상하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당신이 느낀 그 어색함이 정답이다. 무념이라는 개념은, 단어 자체에서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여겨진다. 무념이란 곧, “생각에 이끌려 다니지 않음”을 뜻한다. 생각에 이끌리지 않는다니, 생각 없이 움직이라는 뜻 같겠지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무념이란 곧, “창문을 열어두는 행위” 에 비유된다. 창문을 열어둔다면, 바람이 들어오고, 머물었다가, 자연스레 나갈 것이다. 생각과 감정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생각이 나고, 감정이 생겨나도, 그것을 붙잡아 괴로워하느니, 인지하고 인정하되, 흘려보내자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보고 나니, 필자에 대한 여러 성찰을 할 수 있었다.
필자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가끔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생각을 멈추려면, 생각을 멈추는 게 뭘까?”라고 또다시 자문자답하는 스타일이란 거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에 대해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못하며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의 시간 동안, 적절히 적응 해 온 탓도 있겠지만, 이 생각이 많은 특성 덕분에, 평소에도 나의 생각을 잘 정리해 둘 수 있었고, 그렇기에 필요한 상황에 적절히 꺼내어 표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필자는 흑역사를 꽤 오래 생생히 기억하는 편이다. 어린 시절의 치기로 했던 행동, 순간적인 감정이 동해서 해버린 말들. 그리고 스스로 떳떳하지 못할 부끄러운 태도. 이런 것들이, 잠자리에 들기 직전 갑작스레 나를 찾아온다. “너 이런 것 했었잖아“라며, 아무런 맥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생각이 많아지도록 만든다. 근데, 이것이야말로, ”무상“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어릴 적의 나는 이미 그 행동을 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과거로 남았고, 나는 그것을 바꿀 수도, 개선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어릴 적의 나인 그대로인가? 이것은 ”무상“보다는 ”무념“의 이야기이지만, 모든 것은 일체 고정됨이 없으며,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어릴 적의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고, 더 많은 생각을 했으며, 과거의 그것이 부끄러운 행동이었음을 알고, 바뀌어 가려는 노력을 했다. 그렇다. 이미 지난 것. 떠올랐다고 해도, 그랬었지. 라는 말 하나로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래. 난 그랬었지. 하면서.
필자는 이 해석을 하며, 요새 유행하는 “건피”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는 “건전한 피드백”의 줄임말인데,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해결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비난하지 말고, 해결할 수 있는 의견을 나누고 방향성을 제시하자는 상황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 역시도 나는 “무념”이 지향하는 방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지금 당장 바꿀 수 없고 개선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고 불만을 가지기보다, 개선이 가능한 부분을 찾고 해결책을 모색함으로써, 무념에 이은 성찰까지 이어지는 방향성. 어쩌면 이것이, 서로를 미워하는 “혐오의 시대”사는 우리들을 위한 해결책이 되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 바꿀 수 없는 부분으로 서로를 미워하기보다,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화합하는 시대로 말이다. 화합의 시대는 곧 무념의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오늘의 글을 마쳐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