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 하루가 남긴 질문들
마데이를 몇 번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날 하루는 나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한 날이 아니라, 나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날이었다는 것을.
그날의 고민은 내가 얼마나 쉽게 기준을 높이는 사람인지를 보여주었고, 좌절은 내가 기대를 얼마나 단단히 붙잡고 사는지를 드러냈으며, 타협은 내가 어떤 방식의 위로를 가장 먼저 찾는지를 알려주었고, 분노는 내 감정이 어디에서 가장 취약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수용의 순간에서야 나는 문제의 윤곽을 처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문제는 하루가 아니었고, 사건도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하루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이해의 시작일 뿐이었다. 마데이는 나쁜 날이 아니다. 오히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내 마음의 구조를 잠시 드러내 보이는 날이다. 잘 흘러가는 날에는 감정이 작동하는 방식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데이는, 내 마음의 흐름이 어긋났을 때 내가 어떤 순서로 흔들리고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설득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마데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늘 질문이 남는다.
나는 왜 그렇게 완벽한 시작을 원했을까?
나는 왜 사소한 실패 앞에서 유난히 예민해졌을까?
나는 무엇을 잃고 있다고 느꼈기에 그토록 쉽게 분노했을까?
그런데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다 보니 조금 불편한 감정 하나가 남는다.
이 분노는 정말 사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오래 쌓아두고 말하지 못한 감정이 우연한 하루를 빌려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을까. 마데이는 나를 이해하게 만들었다기보다 내 안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준 날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단순한 짜증이나 예민함이 아니라, 오래 눌러두었던 비교, 억울함, 자기 검열, 그리고 말하지 못한 분노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제 다음 질문이 남는다. 이 감정은 왜 이렇게 늦게, 이렇게 비틀린 형태로 나타났을까. 이 질문에서 마데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