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칭찬의 대가

칭찬은 업무를 늘린다

by NaeilRnC

회사에서 칭찬은 두 종류다. 진짜 칭찬과, 업무 배정.

진짜 칭찬은 1년에 한 번쯤 우연히 나온다. 술자리에서, 누군가 취했을 때.

업무 배정은 매일 나온다. 맨 정신으로, 회의실에서.

회사는 둘을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후인씨, 역시 잘하네.”


후인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기쁨이 아니라 경계. 사람은 맞아본 적 있는 곳을 먼저 감싸 쥔다.

그날도 평범한 아침이었다.

메일함엔 읽지 않은 메일이 스물두 개, 단톡방엔 ‘긴급’이라는 단어가 이미 세 번 등장해 있었다.

회사는 늘 긴급하다. 긴급한데 늘 이렇게 굴러간다는 게 더 무섭다.

후인은 전날 밤까지 다듬었던 보고서를 출력해 부장 책상 위에 올려뒀다.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종이가 스스로 말하는 것 같았다.

‘나 열심히 했어. 나 진짜 했어. 그러니까 이제 좀 쉬자.’


후인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부장이 불렀다.

“후인씨.”


후인은 고개를 들었다. 부장은 웃고 있었다. 웃는 부장은 늘 칼을 숨긴다.

“이 보고서 말이야. 와… 진짜 깔끔하다. 문장도 딱딱 안 하고, 논리도 있고. 역시 후인씨야.”


후인은 자동으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회사에서 ‘네’와 비슷하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더 하겠습니다. 튕기지 않겠습니다.

부장은 칭찬을 한 번 더 얹었다.

“이런 건 진짜 아무나 못 해.”


그 순간, 후인은 마음속에서 작은 경보음을 들었다. ‘아무나 못 해’는 칭찬이 아니라 독점권 부여다.

회사에서 독점권은 특권이 아니라 독박이다. 부장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새 프로젝트 들어오거든? 그거… 후인씨가 기획부터 잡아줘.”


후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머릿속은 이미 계산 중이었다.

기획 잡고, 일정 잡고, 설문 설계하고, 분석하고, 보고서 쓰고, 발표하고.

그리고 중간에 ‘클라이언트가 좀 예민해서’가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후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획은 제가 하되, 분석 파트는 분담 가능한가요?”

부장은 손을 휘저었다.

“아니 아니, 그건 나중에 도와줄게. 일단 큰 그림만 잡아. 후인씨가 그거 제일 잘하잖아.”


도와줄게. 회사에서 “도와줄게”는 이런 뜻이다.

네가 다 해. 내가 한 번 볼게. 문제 생기면 같이 책임질게. 먼저 맞는 건 네가.


후인은 그 자리에서 거절하지 않았다. 거절하면 ‘협업이 안 되는 사람’이 된다.

이 업계에서 협업은 기술이 아니라 성격으로 판단된다. 그날 오후, 후인은 기획안을 쓰기 시작했다.

쓰면서 느꼈다. 칭찬을 받았을 때 올라갔던 기분이, 이상하게도 똑같은 속도로 내려간다는 걸.

손은 바쁘지만 마음은 자꾸 딴 데로 갔다.

‘왜 칭찬을 받으면 일이 늘어나는 걸까.’


회사는 능력을 보상하지 않는다. 회사는 능력을 활용한다. 보상은 가끔 하고, 활용은 항상 한다.

다음날 아침, 부장이 다시 불렀다.

“후인씨, 어제 기획안 봤는데. 와… 역시다. 이런 건 진짜 후인씨가 해야 돼.”


후인은 이미 알았다. 이 칭찬 다음에 붙을 문장을. 부장이 말했다.

“아,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요청 하나 추가했어. ‘사례조사’도 넣어달래. 해외 사례까지. 후인씨가 찾아서 정리해 줘.”


후인은 웃었다. 웃음은 나왔다. 뇌는 이미 포기했다. 해외 사례. 회사에서 해외 사례는 이런 뜻이다.

시간 더 써. 근거 더 가져와. 근데 예산은 없어. 마감은 그대로야. 후인이 말을 꺼냈다.

“그럼 일정이 조금—”


부장이 끊었다.

“아니, 후인씨는 되잖아.”


되잖아. 칭찬처럼 들리지만 주문이다. 너는 ‘되는 사람’으로 굳었으니 계속 ‘되게’ 해라.

후인은 그날 밤 야근을 했다. 사무실엔 후인만 남아 있었다.

키보드 소리와 프린터 소리만 있었고, 그 사이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은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 유능한 사람이다.’


무능한 사람은 욕을 먹고, 유능한 사람은 일을 먹는다. 후인은 새벽에 파일을 저장했다.


기획안_초안_v1.pdf


그리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몸은 피곤했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칭찬이 계속 머릿속에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후인씨야.”

“이런 건 아무나 못 해.”

“후인씨는 되잖아.”


그 말들이 칭찬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사슬처럼 느껴졌다. 후인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칭찬은 사람을 올려주지 않는다. 사람을 고정한다. 그리고 고정된 사람은 늘 먼저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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