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4

뭔가 간을 보는 느낌

by NaeilRnC

난 솔직히 일 잘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게 편하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 나도 그들처럼 일을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간을 보는 사람이 있다. 내 윗직급의 그분은 나보다 4살이 어리다. 그런데 묘하게 일을 잘할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일을 던져놓고 내가 언제 물어볼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기분이 나빴다.

왠지 무시당한 기분이 오늘 하루를 관통한다. 더 기분이 나빴던 건, 그게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업무를 던져놓고 설명은 최소로 하고, 내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지켜본다. 이건 ‘나를 시험’한다기보다는 ‘나를 분류’하는 것 같았다.


쓸 사람인지, 아닌지.

시간을 들일 사람인지, 아닌지.

옆에 두고 키울 사람인지, 아니면 그냥 알아서 굴러가게 둘 사람인지.


하지만 그는 정작 나보다 몇 달 먼저 왔을 뿐이다. 나를 평가할 수는 있지만 그 평가가 얼마나 유효할지 아직 알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빴다.


나는 그런 시선에 익숙했다. 회사에서 사람을 보는 눈은 대개 온기가 아니라 효율로 맞춰져 있으니까. 처음 온 사람에 대한 회사의 시선도 나는 잘 알고 있다. 더군다나 나는 그들보다 나이가 많고, 나름의 경력도 있고, 학력도 있다. 그러니 그들끼리는 아마 내 얘기를 했을 것이다. 직접 들리지 않아도, 그런 건 은근한 표정과 말투에서 어딘가 새어 나온다.


이 회사는 뭔가 체계가 잡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동시에 이상하게 ‘오리엔테이션’이 약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런 조직일수록 신규자를 오래 데리고 갈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신규자가 언제 나갈지 모른다는 전제를 깔고 움직인다.


가르치고, 붙잡고, 시간을 쓰는 일이 ‘투자’가 아니라 ‘리스크’가 되는 순간이 있다. 기껏 가르쳤는데 일을 벌여놓고 떠나버리면 남는 사람들은 그 뒷수습을 떠안아야 한다. 그래서 결국, 회사는 가르치는 걸 최소화한다. 대신 지켜본다. 간을 본다. 2020년에 설립됐는데 관리자 2명 외 직원들이 채 2년을 넘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다.


문제는, 그런 구조 속에서 ‘새로 온 사람’이 자기 자리를 만드는 방식이 정해져 있다는 거다. 질문을 하면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된다. 질문을 안 하면 ‘소통이 없는 사람’이 된다. 더군다나 나는 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에 자칫 실수를 하게 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머뭇거렸다.


내가 언제 질문할지 기다리는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내 위치가 정해질 것 같아서 더 늦어졌다. 그래서 나는 일단 검색을 했다. 자료를 찾아봤다. 예전 문서도 뒤졌다. ‘예전처럼’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그 말이 늘 “너는 알아서 해”로 번역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맥락 없이 디테일만 지시하는 게 이상했지만, 오늘 아침부터 계속된 회의와 그분의 외근 때문에 물어볼 타이밍은 계속 지나갔다. 시간만 갔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물어봤다. 정확히는 질문을 던진 게 아니라, 양해를 던졌다.

“제가 이 부분은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을까요?”


그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잠깐 정적이 있었고, 그 정적이 나에게는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같았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저는, 먼저 물어보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역시나 먼저 작업을 하셨네요.”


순간, 나는 틀렸다는 사실보다 어디서부터 틀렸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더 짜증 났다. 그리고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 들었다. 이 사람은 ‘설명’을 잘 못한다. 나도 팀을 이끌어 본 적이 있다. 나는 팀원들에게 업무를 내릴 때 전반적인 맥락을 먼저 설명한다. “왜 이걸 하는지”부터. 그다음에 “누가 어디까지 맡는지”를 정리한다. 그래야 다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을 잘 모르는 사람은, 맥락 대신 조각을 던진다. 알아서 맞추길 바란다. 맞추면 넘어가고, 못 맞추면 판정을 내린다. 오늘 내가 느낀 방식이 딱 그랬다. 물론 그 역시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으니, 아직 업무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이나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는, 친절함 속에 꿀이 묻었는지 독이 묻었는지 티가 난다. 오늘은 그게 보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사과를 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그래, 내가 빨리 적응하면 너도 편하겠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그를 존경하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그 마음이 내 쪽을 살려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시련이 지나면 내가 그보다 더 일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그런 생각이 든 건,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리서치회사에서 다른 분야로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처럼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결국 오늘 처음으로 초과근무를 신청했다. 팀장님이 놀라서 나오셨다. “일이 많아?”라고 물어보셨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조직에서 초과근무는 보통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혼자 남겨져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그래서 오늘을 계기로 나는 일에 대한 부담을 덜기로 했다. 더 잘해야겠다고 욕심을 부릴수록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백지에 다시 그림을 그리는 심정으로 배우기로 결심했다. 어쨌거나 오늘은, 피곤한 날이었다. 피곤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계속 설명해야 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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