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6

1년 같은 5일이었다.

by NaeilRnC

나는 군대를 가고 싶었는데 4급을 받았고, 공익근무요원을 했다. 그것도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나는 그곳에서의 경험들(자세히 쓰기엔 여러 사정이 있어 여기서는 생략) 때문에 공무원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복무가 끝날 무렵 사무국장님이 “넌 공무원이 체질”이라며 기능직으로 지원해 보라 했지만, 결국 하지 않았다. 나중에 기능직이 일반직으로 전환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조금 후회하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


그리고 그 경험들 때문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그때부터 공무원을 싫어했고, 최근까지 나는 공무원을 괴롭히던 사람이었다. 중장기종합발전계획 수립 연구용역들을 수행하면서 회의실에서 정말 많은 공무원들과 부딪혔다. 그들은 회의실에서 늘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그 질문들은 검토가 아니라 “퇴짜 예고편”처럼 들었다.


“아니, 이걸 왜 하죠?”
“근거는 뭐죠?”
“세부계획을 주셔야죠.”
“이 사업은 엉터리예요.”


나는 그 말들이 싫었다. 반대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무조건 다 안 된다고만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은 나에게 “잘 모르면서”로 들렸고,

‘근거’라는 말은 나에게 “대충 한다”로 들렸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그들을 ‘일하기 싫어하는 철밥통’이라고 욕했다. 하지만 지난 5일 동안 공무원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그때 공무원들이 내게 던졌던 질문들은 게으름보다 방어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왜 하죠?”는 ‘명분’을 달라는 말이었고,
“근거는?”는 ‘감사에 남을 문장’을 달라는 말이었고,
“세부계획”은 ‘책임의 범위’를 정하자는 말이었고,
“엉터리”는 ‘이대로 했다가 내가 제일 먼저 죽는다’는 경고였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 그들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들은 나를 괴롭힌 게 아니라 자기 목숨줄(=감사)을 지키려고 질문했던 거였다. 그 질문의 뒤에는 항상 같은 문장이 숨어 있었다.

‘이거, 누가 책임지죠?’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공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좋은 아이디어’보다 ‘살아남는 문서’가 먼저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그들 입장에서 나는 ‘만고의 역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업을 던지는 사람은 퇴근하면 끝나지만, 사업을 받는 사람은 퇴근 이후까지도 그걸 붙잡고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이번 기회에, 공직에 계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한다. 제가 그동안 ‘사업’을 던진 게 아니라 ‘업무’를 던졌던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지만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참석했던 회의 시간에는 한국말로 얘기들을 하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월요일엔 업무용어들이 전부 외국어처럼 들렸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뭔가를 알려주는데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문서를 만들어내긴 했었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大' 까였다. 목요일에는 그래도 약간의 보완을 했다. 그리고 오늘, ‘추진계획’을 3개나 작성해 냈다.


그렇게 5일을 보내고 나니, 정말 1년 같은 시간이었다. 아직 다섯 번 출근했을 뿐인데,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십 번의 회의를 했고, 수십 번 반려당했고, 수십 번 다시 써냈다. 그리고 퇴근. 정말이지 다디단 퇴근을 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그동안 소홀했던 나의 새로운 취미생활인 ‘브런치’에 집중하기 위해, 당분간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이번 주말은 정말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서 널브러져 있을 계획이다.


주말 잘 보내시고, 감기 조심하시고, 로또맞고 부자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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