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10

점심으로 서브웨이를 갔는데

by NaeilRnC

퇴근시간이 넘었음에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일을 하도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다.

지난주에는 5일의 근무일이 1년 같았는데, 벌써 화요일이 지나 수요일로 가고 있다.

이 회사에 적응할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좋은 일인가?


내 경험상 회사의 시간이 빨리 간다는 건 대체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이렇게 지나가고 나면, 내게 남는 게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을 하면 조금 우울해진다. 지금의 회사에서 나는 계약직이다.


3개월 단위 계약이고, 상황에 따라 연장되어 길게는 1년 9개월까지 갈 수 있다.

2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규직이 된다고 해도 연봉 인상이나 호봉, 승진의 기회는 없다.

고용은 안정될지 몰라도, 성장 경로는 막혀 있다. 말 그대로 말뚝이다.

정년 보장, 익숙해지면 ‘꿀’이 될 것 같은 직무, 친절한 사람들.

그런데 그 외에 내가 올라갈 길은 없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

뭔가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고, 익히고, 체득하고 싶다.


어제는 꿈을 꿨다. 갈증에 허덕이다 물을 들이켰는데, 그 물통 안에 담뱃재가 가득 들어 있었다.

해몽은 나름 ‘길몽’이라지만, 나는 길몽을 믿지 않는다. 믿어본 적도 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은 꿈이 자꾸 현실처럼 남는다. 현실에서 못 마시는 걸, 꿈에서라도 마시려는 것처럼.


내가 존경하려 애쓰는 나의 어린 상사는 점점 내게 자신의 일을 옮기고 있다.

아주 교묘하게, 한 번에 던지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이건 분배가 아니라 이관이다. 남의 시간을 자기편으로 옮기는 기술이다.

재미있는 건, 그 사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점점 싫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남아 초과근무수당을 챙기면서, 자신의 일은 조금씩 누군가에게 나눠준다.

그런데 이상하게, 본인만 모른다. 아니, 모르는 척한다.

오늘 나는 분명 점심으로 서브웨이를 갔었는데, 퇴근시간이 넘었음에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오늘 하루 동안 일을 정말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주보다 10배는 빨리 지나갔다. 좋은 일인가?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내가 비어 있는 쪽이 더 큰 하루였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될까. 내일도 별 탈 없는 하루가 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