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과 죄수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 이론의 핵심을 나는 ‘공동체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둘이 같은 편이라는 믿음, 다시 말해 신뢰가 있으면 둘 다에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근데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구조다. 구조가 배신을 이득으로 만들면, 공동체 의식은 생각보다 빨리 무너진다.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어제 나를 포함한 직원 대부분이 6시 이후에도 근무했다.
사기업에서는 한두 시간 야근이 워낙 통상적이고, 무급인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나는 7시 넘어서 퇴근했지만 초과근무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 몰라 다른 사람들이 초근 신청을 했는지 찾아봤다.
내가 확인했을 시점에는 이미 두 명이 퇴근한 상태였고, 신청서도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초근 신청을 하면 바로 시스템에 뜨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 역시 “아, 여긴 그냥 이렇게 가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오늘 아침 팀장님이 말했다.
“어제 초근했는데 왜 신청서 안 올렸어?”
알고 보니 모두 1시간에서 그 이상씩 초과근무를 올렸다. 나만 안 올린 거였다.
순간 ‘각자도생’이 떠올랐다. 그리고 ‘죄수의 딜레마’가 생각났다.
그들에게 나는 변절자일까. 아니면 나에게 그들이 변절자일까.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면 나는 초반에 늘 혼란스럽다.
내가 자유롭게 일하던 스타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들 나름의 방식’이 낯설다.
예전에 딱 한 번, 나랑 맞는 팀이 있었는데 그때는 모든 게 말없이 통했다. 그래서 지금 더 대비된다.
입사 첫날부터 이미 작은 규칙들이 보였다. 나는 막내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ㄳㄳ” 같은 말을 가볍게 썼다가, “회사에서는 그런 표현 쓰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알았다.
이 조직은 친절해 보이지만, 언어와 태도에 보이지 않는 규정이 있는 곳이구나.
매일 전 직원이 함께 점심을 먹는다. 처음엔 친목인가 싶었는데, 곧 알게 됐다.
그건 친해지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들 방식’으로 유지되는 생활 규칙에 가까웠다.
그런데 초근을 안 올렸다고 지적을 받으니,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내가 잘못한 건 맞다. 다만 나는 그 규칙을 몰랐고, 그들은 “몰랐을 리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 짧은 차이가 사람을 변절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에서 대체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쪽이었다.
모임도 만들고, 술자리도 만들고, 친목도 도모했다.
“일이 힘들지 사람이 무슨 죄냐.”
“제일 나쁜 사람은 사장뿐이지, 우리끼리는 싸우지 말자.”
서로 힘들게 일하는데 서로 미워할 필요가 없다는 주의였고, 그 결과로 지금도 ‘술찾사’가 운영된다.
내 스타일이 여기서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 회사가 갑자기 싫어졌다.
이상하게도 ‘일’이 정말 힘들거나 ‘대표’가 쓰나미급일수록 직원들이 잘 뭉친다.
적이 분명하면 아군도 분명해지니까. 그리고 그런 회사는 사건이 끊이지 않아서, 버틸 핑계라도 생긴다.
하지만 친절한 사람들이 많은 회사는 다르다.
겉으로는 다정하고 조용한데, 안에서는 각개전투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내 근무평점이 높을수록 내 성과급이 올라간다. 그러면 주변 사람이, 좋은 사람인 동시에 경쟁자가 된다.
협력하면 팀은 편해진다. 대신 나는 손해를 본다.
배신하면 나는 편해진다. 대신 나는 ‘함께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계산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계산이 쌓이면, 공동체 의식은 말로만 남는다.
오늘의 초근 신청 사건은 작지만, 나에겐 꽤 정확한 힌트였다.
이 회사에서 ‘우리’는 친목이 아니라 규칙이고, 그 규칙을 모르면 어느 순간 변절자가 된다.
그래서 오늘은 일부러 '점심값'을 벌기 위해 초근을 올리고 퇴근했다.
신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