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12

브런치의 무서움

by NaeilRnC

오늘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나의 브런치가 구글링에 검색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음… 그런데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더 조심해야겠다.
그래서 오늘은 명예훼손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명예훼손의 성립 요건은 공연성(불특정 다수에게 전파 가능), 특정성(피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음), 그리고 명예훼손적 사실 적시(사회적 평가를 저해하는 사실을 말함) 3가지라고 한다. 여기서 사실 적시의 경우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고 비방 목적이 없으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으며, 허위사실 적시는 더 무겁게 처벌된다고 한다.


여기서 위법성 조각(違法性阻却)이란, 형식적으로는 범죄나 불법 행위의 요건을 갖추었지만 실제로는 법질서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유가 있어 행위의 위법성을 없애는 것. 즉, 이러한 사유(위법성 조각사유)가 있으면 행위는 적법해져 범죄가 성립하지 않으며 대표적인 예로는 정당방위, 긴급피난, 자구행위, 그리고 정당행위(법령에 의한 행위, 업무로 인한 행위 등) 등이 있다고 한다.


정리하면 핵심 성립 요건은 이런 식이다.


공연성 (Publicity): 내용이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질 수 있는 상태. 온라인 단체 채팅방, SNS 게시글, 카페 등이 해당하며, 소수에게 말했어도 전파될 가능성이 있으면 인정될 수 있다. 둘만 보는 메시지나 DM은 원칙적으로 공연성이 없으나, 전파 가능성이 있다면 인정될 수 있다.

특정성 (Specificity): 말하거나 게시한 내용으로 피해자가 누구인지 다른 사람들이 명확히 알 수 있어야 하며 이니셜, 별칭, 사진 등 주변 정보로 특정될 수 있습니다.

명예훼손적 사실 적시(Defamatory Statement): 사실의 적시는 단순히 주관적인 의견이 아닌, 객관적으로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사실(예: "A는 뇌물을 받았다")을 말하며 사회적 평가 저하는 적시된 사실로 인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나 명예가 훼손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요건들을 따졌을 때, 내가 일기에서 누군가를 언급했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될 수 있다면 나는 명예훼손의 성립 요건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게 “명예훼손”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니라 ‘공연성’이 너무 쉽게 성립되는 온라인의 구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브런치에 올린 글은 나만 보는 일기가 아니다. 링크 하나면, 캡처 한 장이면, 그리고 무엇보다 구글 검색 한 번이면 내 글은 이미 불특정 다수에게 열려 있다. ‘일기처럼’ 글을 썼지만, 사실상 ‘게시물’이었다.


더 무서운 건 특정성이다. 나는 이름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알아본다. “막내”, “팀장”, “그날의 회의”, “그 동네”, “그 표현” 같은 조각들이 모이면, 누군가에게는 퍼즐이 된다. 나한텐 흐릿한 장면인데, 누군가에겐 너무 선명한 얼굴이 될 수 있다. 특정성은 이름이 아니라 맥락으로 완성된다는 말을 오늘에서야 실감했다.


그리고 사실 적시는 더 까다롭다. ‘사실’은 진실이냐 거짓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진위 판단이 가능한 문장이라는 점에서 위험하다. “그 사람은 이랬다”, “저 사람은 저랬다” 같은 문장들이 감정의 토로처럼 보여도, 누군가에게는 단정이 된다. 나는 그냥 오늘 있었던 일을 ‘기록’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판결문’처럼 읽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결국 오늘 내가 배운 건 간단하다. 글은 감정의 배출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증거가 된다. 내가 내 삶을 쓰는 순간, 누군가는 그 글에서 자신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내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가 섞인다.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 내가 제일 조심해야 할 지점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몇 가지 규칙을 세우기로 했다.

첫째, 특정인을 떠올리게 하는 직함·부서·지역·시간·사건 순서 같은 디테일을 의도적으로 흐린다.
둘째, “~했다”처럼 단정하는 문장 대신, “~처럼 느꼈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처럼 내 감정과 인식으로 돌려 쓴다.
셋째, 누군가의 평판을 깎을 수 있는 문장은 특히 더 멈춘다. 나의 분노가 문장으로 정리되는 순간, 그건 종종 ‘설명’이 아니라 ‘규정’이 되기 때문이다.


브런치가 무서운 이유는, 글이 멀리 가서가 아니다. 글이 멀리 간다는 걸 내가 이제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는 그저 쓰고 잊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알았다. 쓰는 순간, 내가 모르는 곳에 남는다.

그래도 나는 계속 쓸 것 같다. 다만, 칼을 꺼내 들기보다는 칼집에 넣은 채로. 누군가를 베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한 글로. 오늘의 결론은 이거다.


브런치는 일기장이 아니다. 공개된 공간이고, 공개된 공간에서는 단어가 생각보다 무겁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무게를 조금 알 것 같다. 알고도 쓰는 사람은, 적어도 예전처럼 무심하게는 못 쓴다.
그래서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한 번 더 멈춰보고 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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