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14

쇠복은 없어도 일복은 많은 사람

by NaeilRnC

나는 일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어떤 회사에서는 ‘소년가장’이었고, 또 어떤 회사에서는 ‘소방수’로 불리었다.

그만큼 일을 몰고 다니기 때문에 한때는 ‘이쁨’을 받기도 했다.
“네가 입사하고 일이 늘었어!”

칭찬인지 경고인지 모를 말인데, 어쨌든 나는 그 말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하는 일 대비 급여는 우울했다.

그래도 나름의 전문성은 늘어갔다. 어떤 회사에서는 사회학 전공했다는 이유 하나로 ‘조직진단’을 그냥 '툭' 던져줬다. 황당했지만 무사히 끝냈고 그때부터 나는 조직진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됐다.


또 어떤 때는 출자출연기관 경영평가를 '툭' 던져줬고, 그 또한 무사히 끝냈다. ‘툭’ 던져진 일을 ‘무사히’ 끝낸 경험이 쌓여서, 결국 나는 “던지면 받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던지는 사람은 점점 편해지고 받는 사람은 점점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이 '이쁜'으로 환전된다. 그게 월급으로 환전되었으면....


지금도 비슷한 양상이다. 입사한 지 근무일 기준 11일밖에 안 됐는데, 일은 매일 비처럼 내려왔다. 피할 수 없었다. 대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내리는 비는 짜증 나지만, 포기하고 흠뻑 젖는 순간 묘한 희열이 들 것이다. 그래서 싸이는 '흠뻑' 쑈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비를 일부러 맞을 생각은 없다.

예전의 비는 목마를 때 먹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비는 ‘어우’다. 마시면 더 찝찝해지고, 더 피곤해진다.

이 회사의 공고를 처음 확인했을 때 나는 공모사업을 담당할 줄 알았다. 업무분장이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까.
그런데 출근을 할수록 다른 일이 넘어왔다. 그렇게 데이터 관리가 넘어왔고, 오늘은 선진지 견학 계획이 넘어왔다. 업무는 이상하게도 ‘필요한 곳’이 아니라 ‘비어 있는 사람’에게로 흐른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많이 비어 보였나 보다. 1월이 끝나고 2월이 시작되면 또 어떤 일이 넘어올지 생각만 해도 너무 기뻐 까무러칠 지경이다. 일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내 역할이 늘어난다는 뜻이고, 덤벼오는 일들과 싸우다 보면 내 역량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야 너무 기뻐 까무러치지 않을 테니까.


나는 관종이 아니지만, 요즘 이 회사에서 사람들은 내 얘기를 하고 있다. 그냥 어쩌다 몇 사람과 대화를 했을 뿐인데, 어느새 다들 알고 있다. 관심을 많이 받는다는 건 너무 기뻐 까무러칠 정도로 좋은 일이다.

가끔 그 관심이 호감인지, 관찰인지 애매할 때도 있지만 일단은 좋은 일로 치기로 했다.


나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비라면, 그냥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옷이 조금 젖으면 찝찝하지만, 아예 흠뻑 젖어버리면 그나마 마음은 편하다.

이제 우산을 접어야 할 때가 왔다. 생각보다 약간 빨리 그 시간이 와서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너무 기뻐 까무러치면 뭐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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