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알고리드미쿠스(Homo algorithmicus)

5. 알고리즘적 인간

by NaeilRnC

호모 알고리드미쿠스는 라틴어 algorithmus /ˈælɡəˌrɪðəm/ *(알고리즘)*에서 따온 말로,

취향이 ‘나의 선택’이 아니라 추천 시스템의 결과로 굳어지는 인간을 뜻한다.

Homo algorithmicus /ˈhoʊmoʊ ˌælɡəˈrɪðmɪkəs/ 는 그 인간형의 이름이다.




취향은 원래 느리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시간을 들여 보고, 실패하고, 질리고, 다시 돌아오면서 남는 것이 취향이었다.

그런데 호모 알고리드미쿠스의 취향은 빠르다. 빠른 건 편리하지만, 빠른 취향은 대개 얇다.

얇은 취향은 쉽게 바뀌고, 쉽게 바뀌는 취향은 결국 ‘내 것’이라는 감각을 남기지 못한다.


이 유형의 선택은 스스로의 욕망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개 피드에서 시작한다.
추천은 친절하다. “당신이 좋아할만한 것.”

문제는 그 문장이 단지 예측이 아니라, 곧 처방이 된다는 데 있다.

내가 좋아할만한 것을 먼저 보여주면, 나는 그걸 좋아하게 된다.

내 취향을 읽어주는 듯하지만, 사실은 내 취향을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호모 알고리드미쿠스는 세 단계로 굳어진다.

첫째, 선택이 데이터가 된다. 클릭, 시청 시간, 멈춘 구간, 넘긴 순간.
둘째, 데이터가 추천을 만든다. 추천은 과거의 나를 복제해 미래의 나를 부른다.
셋째, 추천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취향’의 이름을 얻는다. 취향이 아니라 경로 의존이 취향처럼 보인다.


전형적인 장면은 이렇다.


당신은 “가볍게 하나만” 보려고 앱을 켠다. 그리고 ‘하나만’은 늘 실패한다.

다음 영상이 자동으로 붙고, 다음 음악이 자동으로 이어지고, 다음 게시물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선택은 계속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계속되는 건 재생이다.

당신은 고른 게 아니라, 흘러가는 것에 남아 있었을 뿐이다.


며칠 뒤, 당신은 어느새 비슷한 것만 보고 있다.
비슷한 얼굴, 비슷한 편집, 비슷한 감정, 비슷한 결론. 편안하다. 불편한 건 걸러지고, 낯선 건 밀려난다.

이때 알고리즘은 ‘맞춤형’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좁힌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견딜 수 있는 크기로 세상을 축소해 준다.


그래서 호모 알고리드미쿠스는 가끔 자유롭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 자유는 선택지의 확장이라기보다, 선택지의 최적화에 가깝다.

나는 더 쉽게 즐기고, 더 빨리 만족한다. 대신 탐색은 줄어든다.


탐색이 줄면 우연이 줄고, 우연이 줄면 세계가 줄어든다. 결국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속에 갇힌다.

그리고 그 감옥은 보기 좋다.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유형을 따로 불러야 했다.


우리는 취향이 ‘개성’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의 취향은 종종 시스템이 허용한 개성이다.

개인화는 개인을 존중하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개인을 예측 가능한 존재로 고정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나는 이 사전에서, 취향이 나에게서 빠져나가 추천으로 이동하는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

당신이 요즘 “원래 좋아하던 것”은 정말 원래부터 좋아하던 것인가.
아니면 당신에게 반복해서 도착한 것이, 결국 당신이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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