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자의 도의
커뮤니티에서 충주맨의 면직을 다룬 글을 읽었다.
"충주맨은 면직의 교과서다"로 시작되는 그 글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떠나기 전까지 주변에 알리지 말 것.
2. 기준일은 수당과 정산에 맞춰 설계할 것.
3. 남은 연가와 병가 등 제도는 끝까지 활용할 것.
첫 번째 의견에 대한 내 생각은 "인정".
조직 안에서 "그만두겠다"는 말이 먼저 퍼지는 순간, 사람들은 의외로 빨리 '의심의 대상'이 된다.
떠나는 사람은 준비하고 싶고, 남은 사람은 이유를 묻고 싶다. 그리고 그 간극에서 소문이 자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말을 아끼는 선택은 자기 방어로는 꽤 합리적이다.
다만, 조직의 입장에서는 준비할 시간을 잃는 셈이라, 결과적으로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
나는 과거에 이른바 '카톡퇴사'로 판을 흔든 적이 많다.
예를 들면, 새벽 기차를 타고 지방에 내려가 하루 종일 "뺑이"를 치는 상황에서 대표가 내 뒷담화를 치고 있다는 말을 동료에게 듣게 됐었고 그 순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몰려온 깊은 '빡침'으로 인해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이 말을 회사 떼방에 남겨놓고 대화방을 나왔었다.
"대표님,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격려보다 밑도 끝도 없는 뒷말로 역적을 만드시니 제가 더 이상 이 회사에 다닐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그때는 내 감정이 너무 앞섰다. 그래서 사장에게 "엿이나 먹어라"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공직의 경우 충주맨의 '갑작스러운'(사실 말을 안 해도 누구나 다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퇴사는 그 후임자에게 본의 아니게 '빅엿'을 멕이는 상황이라 '1번'을 교과서라 보기 힘들다.
두 번째 의견도 "인정".
나는 퇴사를 하더라도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퇴사는 깔끔하게"가 나의 모토였다.
그러나 이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손해를 본 적도 많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정산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와 '절차'의 문제에 가까웠다.
다만 나는 수당이나 정산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확'와닿지 않는다.
지금의 회사에서 퇴사가 고민인 이유 중 하나는 지금 나가면 '꿀'만 빨다가 나가는 것 같은 '찝찝함' 때문이다.
입사 후 한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솔직히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월급과 명절수당만 챙기고 나간다는 게 내 개인적인 '가오(かお)'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돈이 없지! 갑빠가 없어'처럼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나는 최소한 뭔가 하나는 제대로 끝내놓고
구성원 모두에게 나의 능력을 인정받은 후 '그놈'에게 'x신, 일하러 왔으면 정치질 말고 일이나 똑바로 해'라는 한마디를 꼭 남기고 싶었다.
세 번째 의견도 "인정".
나는 그동안 휴가라는 걸 써 본 적이 거의 없다. 나에게 '슈가'는 저 우주공간 너머에 있는 달달한 무엇일 뿐.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리'가 아닌 것 같았다.
민간에서 휴가는 '제도는 있지만 못 쓰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같은 개념이 더 크기 때문에 남은 휴무를 활용하고 떠나는 선택이 개인에게 합리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 역시 '확'와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가지가 맞는 말이고, 인정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것들이 언제나 좋은 선택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교과서라기보다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리 읽어야 하는 '공직자용 참고서' 정도가 더 정확해 보인다.
세상은 좁고, 우리는 언제 어디선가 '그놈'을 다시 만날지 모른다.
예전에 마라톤 알바를 하면서 나에게 크게 혼나던 여고생을 회사에서 상사로 만날 때처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상처'가 언젠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나에게 '등짝스매싱'을 날릴 수도 있다.
그래서 떠나는 방식에도 최소한의 도의가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뒤에 남을 사람을 위해서 필요하다.
물론, 충주맨의 퇴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동의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콩가루라도 조직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퇴사해 버리기 시작하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어우'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