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36

얇아지는 명절, 이대로 좋을까?

by NaeilRnC

부모님은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때가 묻고 퍽퍽한 세상에 물들어서일까. 명절의 의미가 내게서 점점 얇아져갔다.


한때는 명절마다 찾아오는 매형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는 게 좋았다.
그때의 명절은 ‘의무’보다 ‘사람’에 가까웠다. 음식 냄새가 집안을 채우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면, 이상하게도 내가 이 집의 일부라는 느낌이 났다. 그게 좋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명절마다 마주치는 현실이 싫어졌다.


의미 없는 물음, 애써 웃어야 하는 대화, 가족들 사이에서도 점점 아웃사이더가 되어가는 기분.

‘가족이니까’라는 말이 오히려 더 잔인한 날들이 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이 더 쉽게 날아오고,

그 말은 대부분 ‘안부’의 얼굴을 한 ‘평가’로 돌아온다.


어렸을 때 조카들은 늘 내게 물었다. “삼촌은 왜 세뱃돈을 안 줘?”

줄 수 없었다. 주기도 애매했다. 아이들에게 세배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어른이기 때문인데,

그 어른에는 이상하게도 ‘가장’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나는 아직 미혼이기 때문에 어른의 조건에서 배제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세배를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세뱃돈을 ‘어른답게’ 줄 수 있을 만큼 삶이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지갑이 두텁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삶의 자리가 아직 ‘설명해야만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명절이 얇아지는 건, 이런 순간들이 쌓이는 방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명절은 ‘함께 있는 시간’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무엇이 아닌지’를 확인받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아직 누구의 남편도 아니고, 누구의 아버지도 아니고, 누구의 가장도 아니다.

그런데 명절은 나에게 그 공백을 한꺼번에 들이민다.

그러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얇아진다. 마음도 얇아지고, 표정도 얇아지고, 명절의 의미도 얇아진다.


누군가 말한다.
조상 잘 만나 부자인 사람들은 해외에서 명절을 보내기 때문에 차례갈등, 명절컴플렉스가 없지만,

조상 잘못 만나 가난한 사람들이 꾸역꾸역 제사상을 차리며 간절히 부자를 기원한다고.

처음에는 그 말이 너무 독해서 불편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상하게 자꾸 머리에 남았다.

차례도 결국 조상에 감사하는 마음일 텐데, 무엇을 감사해야 하지?

나를 낳아주셔서 감사해야 하나? 그건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나를 키워주셔서 감사해야 하나? 그건 내 부모님과, 내가 아는 얼굴이면 족하다.

그럼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하지?


여기서부터 명절은 종교가 아니라 경제가 되고, 문화가 아니라 계급감각이 된다.
‘감사’라는 말은 원래 따뜻한데, 명절에서의 감사는 자꾸 영수증처럼 느껴진다.

내가 받은 것과 내가 돌려줘야 하는 것을 계산하게 만든다.

감사가 마음이 아니라 비용으로 느껴지는 순간, 의식은 의식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한때 우리집은 서울로 가려면 우리집 땅을 밟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많은 땅이 있었다고 한다.
나의 고향이 논, 밭에서 아파트 단지로 바뀌던 26년 전.

소똥냄새가 나서 곁에 친구도 없었던 아무개는 벤츠를 샀다.

고등학교도 못 갔던 아무개는 PC방을 5개나 소유한 부자 사장님이 되었다.


하지만 내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은 학교를 가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들어갔던 스파르타 학원에서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형편은 더 기울었다. 노력의 문제라기엔 세상이 너무 비스듬했고, 운이라기엔 설명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명절이 더 얇아졌다.
명절은 원래 “어떻게 지냈니”를 묻는 자리여야 하는데, 내게는 “왜 아직 거기니”로 들리는 자리였다.

누군가의 성공은 덕담처럼 포장되지만, 누군가의 정체는 조용한 죄가 된다.

나는 그 죄를 명절마다 반복해서 판결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의 족보상 누나는 명절마다 우리집을 찾아와 불평해댔다.
그 많던 땅을 다 팔아먹고도 파렴치하게, 자신의 아버지에게 빚 내어 차례 준비를 하던 어머니께 무례했다.

나는 그 꼴을 보며, 내가 어른이 되면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제사는 조상을 모시는 의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산 사람들 간 권력과 무례가 가장 쉽게 드러나는 무대다.
누군가는 절을 하고, 누군가는 지시를 하고, 누군가는 돈을 내고, 누군가는 입을 닫는다.

그리고 그 배치가 한 번 굳어지면, 명절은 ‘감사’가 아니라 ‘구도’를 반복하는 행사가 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물며 부모 상 중에도 숟가락을 위로 들어올려야 한다.
그런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집안의 역적과 같은 그분을 위해 왜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얼굴에게 예를 올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얼굴이 남긴 흔적의 비용을 왜 지금의 산 사람들이 대신 치러야 하는지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명절을 ‘조상을 모시는 날’로 받아들이기보다,

‘산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시험하는 날로 받아들인다.

차례상 위에 올라간 음식보다, 그 음식 앞에서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조상을 공경한다는 말이 살아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면죄부가 되는 순간,

그 명절은 이미 조상을 팔아먹은 명절이다. 결국 내 질문은 이것이다.

명절 단축근무가 복지냐 배려냐 같은 논쟁보다 더 앞서,

우리는 왜 명절을 이렇게까지 버거운 이벤트로 만들어버렸을까.


누군가는 해외로 떠나며 명절을 ‘쉼’으로 만들고,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며 명절을 ‘검문’으로 만든다.

같은 명절인데 체감이 이렇게 다른 사회에서,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는 말은 너무 쉽게 던져진다.

명절의 의미가 얇아지는 건, 내가 조상을 덜 존중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사람을 더 거칠게 다루기 시작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거칠음이 가장 먼저 새는 곳이, 이상하게도 가족이라는 가장 사적인 장소라는 게 더 씁쓸하다.


제사를 지낼지 말지, 명절을 어떻게 보낼지, 가족을 어떻게 대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 했다.

다만 분명한 한가지는 의식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다.

명절이 얇아져도, 사람까지 얇아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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