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반도체를 못 만드는 이유?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 왜 유럽에서는 반도체를 만들지 않는가.
사실 유럽의 과학기술은 아시아보다 더 대단한 수준이다.
현대 과학의 모체가 유럽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기술과 학문, 산업의 뿌리가 깊다.
게다가 영국, 프랑스, 독일. 부국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가 유럽이다.
돈도 있고, 기술도 있고, 역사도 있다.
그런데 왜, 반도체는 유럽이 아니라 한국과 대만, 그리고 일부 미국 기업이 쥐고 있을까.
나는 이 질문이 “유럽이 못 해서”가 아니라,
더 정확히는 “유럽이 어떤 종류의 반도체 산업을 ‘선택’해왔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반도체는 기술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산업구조)문제이고, 더 깊게는 노동과 시간의 규범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도체”라고 말할 때, 머릿속에는 보통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초대형 공장, 초미세 공정, 24시간 가동, 끝없는 설비투자, 수율 전쟁. 그런데 반도체는 한 덩어리가 아니다.
자동차·전력·산업용 반도체처럼 안정성과 신뢰성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영역도 있고,
메모리·선단 파운드리처럼 속도와 세대 전환이 생존인 영역도 있다.
유럽은 전자를 완전히 비워둔 곳이 아니다. 문제는 후자, 즉 우리가 “반도체 패권”이라 부를 때
주로 떠올리는 초대형 선단 제조 모델에 사회 전체가 깊게 들어가느냐의 선택이다.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산업구조다. 반도체 공장은 “공장”이라기보다 인프라다.
한 번 지어놓고 끝나는 산업이 아니라, 세대가 바뀔 때마다 다시 깔아야 하고
장비도 공정도 계속 갈아엎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장을 지탱하는 건 공장 벽 안의 기술만이 아니다.
전력, 물, 도로, 물류, 인력, 협력업체, 연구소, 교육훈련 체계까지 사회 전체가 맞물려야 한다.
이 지점에서 제도 이야기가 들어온다.
Hall과 Soskice(2001)는 국가마다 서로 다른 제도 조합이 기업의 전략과 경쟁우위를 만들고, 산업의 성패를 조건짓는다고 본다. 즉, “기술이 있으니 하면 된다”가 아니라, 그 기술이 산업으로 굴러가게 만드는 제도·재정·노동시장·교육훈련·규범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선단 반도체 제조는 이 결합이 특히 빡빡한 산업이다. 초대형 투자에 대한 국가의 리스크 분담, 인허가 속도, 전력·용수·환경 규범의 조정, 공급망 집적, 그리고 무엇보다 연속 가동(continuous operation)을 감당하는 운영체계까지. 이건 기업의 결심만으로 되기 어렵다. 국가가 “함께 짊어질 것인가”를 결정해야 시작된다.
두 번째 이유는 문화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씁쓸해진다.
선단 제조는 365일 24시간 3교대로 돌아가야 한다. 공장이 쉬면 손실이 커지고, 수율이 흔들리고, 납기가 밀리고, 결국 경쟁에서 늦는다. 그래서 공장은 쉬지 않는다. 문제는 공장이 쉬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공장이 쉬지 않으려면, 사람의 시간이 어떤 형태로든 그 구조에 붙는다. 야간, 주말, 호출, 상시 대기.
기술은 실리콘 위에 새겨지지만, 그 실리콘이 끊기지 않게 돌아가도록 만드는 건 결국 인간의 시간표다.
Thompson(1967)은 산업자본주의가 시간규율(time-discipline)을 강화하면서 갈등이 ‘성실/태만’이 아니라 시간을 둘러싼 분배와 통제의 문제로 이동한다고 분석한다.
그는 “노동자들은 시간이란 대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둘러싼 배분과 통제 문제를 두고 싸우기 시작한다(the workers begin to fight, not against time, but about it)”(Thompson, 1967, p. 85)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선단 반도체의 현장에 그대로 내려앉는다. 여기서 시간은 단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은 곧 수율이고 손실이고 납기고 점유율이다. 그래서 시간은 기술의 변수가 아니라 사회적 배분의 문제가 된다. 누가 밤을 내고, 누가 주말을 내고, 누가 대기하는가.
Polanyi는 더 근본적으로 말한다. Polanyi(1944/2001)는 노동을 삶의 다른 활동에서 분리해 시장의 법칙에 종속시키는 발상이 사회의 유기적 삶을 훼손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적었다.
“노동을 삶의 다른 활동들로부터 떼어내어 시장의 법칙에 종속시키는 것은, 사회적 삶의 유기적 형태를 파괴하는 일이었다(To separate labor from other activities of life and to subject it to the laws of the market was to annihilate all organic forms of existence …)”(Polanyi, 1944/2001, p. 162).
이 문장을 읽으면, 선단 제조의 24/7 운영 모델이 왜 불편한지 선명해진다.
노동을 ‘공정의 리듬’에 붙여놓는 순간, 일상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대기 시간이 된다.
사람의 생활이 공정의 부속품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생긴다. 그리고 여기서 유럽의 선택이 갈린다.
유럽이 완벽하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제도와 규범의 기본값이 “공장이 안 쉬니까 사람도 안 쉬어야 한다”로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일’이 삶 전체를 점령하는 것을 당연한 비용으로 처리하는 데 더 조심스러운 사회다.
Esping-Andersen(1990)은 복지국가 논의에서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를 설명하며, 서비스가 권리로 제공되고 개인이 시장에 의존하지 않아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때 탈상품화가 성립한다고 말한다.
원문은 이렇게 쓰여 있다.
“서비스가 권리로 제공되고, 한 개인이 시장(노동시장)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때(when a service is rendered as a matter of right, and when a person can maintain a livelihood without reliance on the market)”(Esping-Andersen, 1990, p. 22).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워라밸’이 아니다. 삶이 시장(노동시장)과 기업의 요구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도록, 사회가 일정한 보호 장치를 기본값으로 깔아두는 방식이다. 그러니 24시간 연속 가동을 전제로 하는 산업을 국가 핵심으로 밀어붙일 때, 그 사회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그 속도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포기해야 하냐고. 그래서 유럽은 반도체를 못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방식의 반도체(사람의 시간을 24시간 운영체계에 강하게 묶는 모델)을 덜 만들거나 안 만들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건 게으름이 아니라 시간을 다루는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여기서 내 마음이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그 빈자리를 누가 채우고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삼성과 하이닉스. 우리가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의 점유율. 그 성취는 분명 자랑스럽다.
하지만 오늘은 그 자랑이 조금 무겁다.
그 점유율이 기술과 자본만으로 만들어졌다고 믿기엔, 너무 많은 ‘3교대’와 ‘대기시간'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유럽이 “안 한다”는 선택의 배경에 노동시간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면,
우리가 “한다”는 성취의 배경에는 누군가의 근로시간과 일상생활이 담보로 잡혀 있는 건 아닐까.
결국 이 질문은 반도체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회는 점유율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고,
어떤 사회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점유율을 내려놓는다.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해 온 걸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느 쪽을 선택할 건가.
점유율을 지키되, 사람의 시간을 덜 담보로 잡는 길은 정말 불가능한 걸까.
자동화, 인력 확충, 교대의 질, 숙련의 설계, 현장 대응의 시스템화.
‘24시간 노동’이 아니라 ‘24시간 시스템’으로 바꾸는 선택지들.
그런 대안을 말할 때조차, 우리는 늘 늦게 말한다. 오늘은 그 생각이, 입안에서 오래 씁쓸하다.
Esping-Andersen, G. (1990). The three worlds of welfare capital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Hall, P. A., & Soskice, D. (Eds.). (2001). Varieties of capitalism: The institutional foundations of comparative advantage. Oxford University Press.
Polanyi, K. (1944/2001). The great transformation: The political and economic origins of our time (2nd Beacon Paperback ed.). Beacon Press.
Thompson, E. P. (1967). Time, work-discipline, and industrial capitalism. Past & Present, 38(1), 5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