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라벨 붙이는 인간
호모 택산스는 라틴어 taxare /tækˈsɛər/(평가하다, 분류하다, 값을 매기다)에서 따온 말로,
사람과 사건을 이해하기보다 먼저 라벨로 분류해 처리하고, 그 분류를 ‘정리’가 아니라 ‘결론’으로 굳혀버리는 인간을 뜻한다. Homo taxans /ˈhoʊmoʊ ˈtæksænz/ 는 그 인간형의 이름이다.
분류는 편하다.
분류는 빠르다.
분류는 복잡한 세계를 한 단어로 줄여준다.
문제는 분류가 ‘정리’에서 멈추지 않고, 곧 판결이 된다는 데 있다.
호모 택산스는 설명을 듣기 전에 분류한다. 질문을 하기 전에 결론을 세운다.
그가 자주 쓰는 말은 대개 이렇게 생겼다.
“저 사람은 원래 그런 타입이야.”
“그 부류는 다 똑같아.”
“그건 결국 성격 문제지.”
이 말들이 하는 일은 단 하나다. 사람을 사건에서 떼어내고, 사건을 구조에서 떼어내고, 모든 것을 개인의 속성으로 환원한다. 그 순간부터 문제는 해결할 대상이 아니라, 피할 대상이 된다. 라벨은 원래 ‘임시’여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한 가설이어야 한다. 하지만 호모 택산스에게 라벨은 임시가 아니다. 라벨은 영구다.
한 번 붙은 라벨은 사실보다 오래 간다. 사실은 변해도 라벨은 남고, 남아 있는 라벨 때문에 새로운 사실도 라벨에 맞게 해석된다.
전형적인 장면은 이렇다. 누군가가 실수한다.
실수에는 맥락이 있다. 업무량, 인수인계, 애매한 지시, 늦은 결정.
하지만 호모 택산스는 맥락을 싫어한다. 맥락은 시간을 요구하고, 시간은 책임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원래 꼼꼼하지가 않아.”
“원래 눈치가 없어.”
“원래 책임감이 없어.”
이 ‘원래’라는 단어가 라벨의 도장이다. 한 번 ‘원래’가 붙으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은 증거로만 읽힌다.
잘하면 “운 좋았네.”
못하면 “거봐, 원래 그렇다니까.”
여기까지는 말의 라벨이다.
하지만 호모 택산스는 말로만 분류하지 않는다.
조직에서는 분류가 더 조용하고 더 강한 형태로 굳는다. 표와 칸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 주간회의에서 화면이 공유된다.
업무명 / 담당 / 진행률 / 이슈 / 다음 액션 / 마감
커서가 빈칸 위에 멈추는 순간, 공기는 먼저 판단을 시작한다.
“왜 아직 회색이에요?”
“다른 칸은 다 초록인데요.”
“이건 리스크로 올려야겠네요.”
표에는 ‘맥락’ 칸이 없다. 사정은 길고, 길면 칸을 넘친다. 칸을 넘치는 말은 대개 ‘변명’이 된다.
그래서 사람은 짧게 말한다. “제가 오늘 정리해서 올릴게요.”
그리고 더 짧게 분류된다.
‘회색인 사람.’
‘비어 있는 사람.’
‘리스크가 많은 사람.’
말의 라벨과 표의 칸은 서로를 강화한다. 표에서 한 번 비어 있으면, 말의 라벨이 붙는다.
말의 라벨이 붙으면, 다음 표에서도 그 사람의 칸이 먼저 의심받는다.
그렇게 분류는 판결이 되고, 판결은 조건이 된다. 조건은 배치를 만든다.
“저 사람은 에이스.”
“저 사람은 문제인력.”
에이스에게 일이 몰리고, 문제인력에게는 기회가 막힌다. 그 배치가 다시 라벨을 강화한다.
라벨은 결과인 척하지만, 사실은 조건을 만든다. 호모 택산스가 분류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분류는 비용을 줄인다.
대화를 줄이고, 설명을 줄이고, 공감을 줄인다. 하지만 비용을 줄이는 동안, 사람도 줄어든다.
사람은 사건에서 떼어지고, 사건은 구조에서 떼어진다. 남는 건 개인의 속성 하나, 그리고 빈칸 하나다.
그래서 조직은 점점 조용해진다. 사람들은 ‘표에 맞는 말’만 한다.
길게 설명하면 칸을 넘치니까.
맥락을 말하면 회의가 길어지니까.
그렇게 표는 더 깔끔해지고, 관계는 더 얇아진다.
나는 이 인간유형을 따로 불러야 했다.
분류는 필요하다. 기준은 공정을 만든다. 하지만 분류가 사람을 고정하기 시작하면, 정리는 이해가 아니라 심판이 된다.
당신이 최근에 붙인 라벨은 무엇인가. 당신이 최근에 비워 둔 칸은 무엇인가.
그 라벨과 그 칸이,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가설이었나. 아니면 더 이상 이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