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없는 선의는 적선뿐이다.
배경 : 칠곡에서 일할 때, 회식 자리에서 사장은 늘 선의는 돼지고기까지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 말은 서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마지막 경계선이며 사회적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식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너무 오래 봐왔다. 오늘은 선의와 대가성에 관한 생각을 적어본다.
돼지고기는 우리 사회에서 기묘한 위치를 차지한다. 소고기만큼 무겁지 않고, 치킨만큼 가볍지도 않은, 절묘한 중간지점. 사람들은 묘하게도 이 수준까지는 “아, 진심이겠구나”라고 받아들이면서도, 그보다 비싼 것이 등장하는 순간 스스로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 선을 넘는 순간부터 호의가 아니라 관계 변화, 기대, 댓가 등 보이지 않는 계산이 시작된다.
몇 년 전 나는 생활폐기물 업체의 단가 조정 용역을 수행하던 중, 업체에 대여했던 장비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금품이 든 봉투를 발견했다.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것이 ‘관계’를 어떻게 뒤틀 수 있느냐였다. 나는 즉시 관할 지자체에 신고했고, 이후 적절한 조치가 진행되었다. 그 경험은 단 하나의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했다. 선의는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맥락의 문제이며, 공정성을 흔드는 가장 미세한 틈이다.
작은 공공용역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더 큰 권력에 접근할 때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 신호를 보낼지는 사실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공적 역할과 가까운 사람에게는 사회가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구조적 이유 때문이다. 왜냐하면, 공정성이 흔들리는 순간 전체 시스템의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고, 작은 오해도 큰 불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며, 권력 주변의 ‘선물’은 사적 호의와 공적 영향력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직자나 공공기관 종사자에게는 청탁금지법이 적용된다. 음식·선물·경조사비의 한도까지 세밀하게 규정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선의처럼 보이는 행위가 실제로는 ‘관계의 문’을 여는 방식으로 남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에는 여전히 가족·배우자와 관련한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직무 관련성이 모호한 상황에서는 법적 해석이 갈릴 수 있고, 이는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문제는 특정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아직 ‘관계의 복잡성’을 완전히 포착하지 못했다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종종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겸손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공적 권력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이 말은 오히려 역설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자신은 아무 영향력도 없다 하지만, 그 말이 존재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영향력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이 모순은 오래된 권력 구조의 특징이기도 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걸 준다”라는말은 사실상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나를 통해 무언가 기대한다’*라는 뜻으로 읽힌다. 공직자 주변에서 발생하는 선물·초대·호의는 대부분 이런 구조적 모순 속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공적 영역일수록 선의가 대가성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더 선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진짜 대가가 없는 순수한 선의는 적선뿐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동기가 될 수 있고, 위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