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는 돼지고기까지

대가없는 선의는 적선뿐이다.

by NaeilR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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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 칠곡에서 일할 때, 회식 자리에서 사장은 늘 선의는 돼지고기까지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 말은 서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마지막 경계선이며 사회적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식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너무 오래 봐왔다. 오늘은 선의와 대가성에 관한 생각을 적어본다.


□ 돼지고기의 마지노선 - 선의의 무게를 가르는 사회적 감각

돼지고기는 우리 사회에서 기묘한 위치를 차지한다. 소고기만큼 무겁지 않고, 치킨만큼 가볍지도 않은, 절묘한 중간지점. 사람들은 묘하게도 이 수준까지는 “아, 진심이겠구나”라고 받아들이면서도, 그보다 비싼 것이 등장하는 순간 스스로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 선을 넘는 순간부터 호의가 아니라 관계 변화, 기대, 댓가 등 보이지 않는 계산이 시작된다.


몇 년 전 나는 생활폐기물 업체의 단가 조정 용역을 수행하던 중, 업체에 대여했던 장비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금품이 든 봉투를 발견했다.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것이 ‘관계’를 어떻게 뒤틀 수 있느냐였다. 나는 즉시 관할 지자체에 신고했고, 이후 적절한 조치가 진행되었다. 그 경험은 단 하나의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했다. 선의는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맥락의 문제이며, 공정성을 흔드는 가장 미세한 틈이다.

작은 공공용역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더 큰 권력에 접근할 때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 신호를 보낼지는 사실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 ‘선의’와 ‘대가성’ 사이 – 공적 역할은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

공적 역할과 가까운 사람에게는 사회가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구조적 이유 때문이다. 왜냐하면, 공정성이 흔들리는 순간 전체 시스템의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고, 작은 오해도 큰 불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며, 권력 주변의 ‘선물’은 사적 호의와 공적 영향력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직자나 공공기관 종사자에게는 청탁금지법이 적용된다. 음식·선물·경조사비의 한도까지 세밀하게 규정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선의처럼 보이는 행위가 실제로는 ‘관계의 문’을 여는 방식으로 남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에는 여전히 가족·배우자와 관련한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직무 관련성이 모호한 상황에서는 법적 해석이 갈릴 수 있고, 이는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문제는 특정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아직 ‘관계의 복잡성’을 완전히 포착하지 못했다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의 양면성 – 권력 주변의 불투명한 구조

사람들은 종종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겸손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공적 권력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이 말은 오히려 역설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자신은 아무 영향력도 없다 하지만, 그 말이 존재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영향력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이 모순은 오래된 권력 구조의 특징이기도 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걸 준다”라는말은 사실상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나를 통해 무언가 기대한다’*라는 뜻으로 읽힌다. 공직자 주변에서 발생하는 선물·초대·호의는 대부분 이런 구조적 모순 속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공적 영역일수록 선의가 대가성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더 선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진짜 대가가 없는 순수한 선의는 적선뿐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동기가 될 수 있고, 위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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