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배경 : 난 더위에 약해 여름보다 겨울을 더 선호한다. 그리고 내가 겨울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언제 돌아보아도 내 마음 깊은 곳을 데워주는 기억들이 대부분 겨울에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통계를 보면 계절별 사망자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 많았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병들이 추위에 더 가혹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불과 10년이 지난 지금, 통계청은 계절별 사망자를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 기후와 일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버려 예전의 기준들이 의미를 잃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변화 속에서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여름이 힘들다. 숨을 쉬어도 공기가 뜨겁고, 냉방비는 난방비와 다르지 않게 무겁다. 이렇게 흘러가다 보면 언젠가는 여름이 ‘더 무서운 계절’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예측과 상관없이, 내가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는 따뜻한 기억 때문이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친구들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꿩이나 토끼를 쫓았다. 고구마밭에서 주워온 고구마를 구워 먹고, 얼어붙은 개울에서 가재를 잡았다. 눈이 오면 세상은 조용해졌다. 그 고요함이 너무 좋아, 숨을 쉬는 것조차 아껴야 할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의 겨울은 추위보다 즐거움이 더 컸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고, 난로 위에서 가래떡을 구워 먹으며 윷놀이를 하던 밤. 꽁꽁 언 저수지에서 깔깔대며 놀던 하루. 내 기억 속 겨울은 늘 반짝이고 따뜻한 계절이었다.
여름이 더 힘들었던 이유를 하나 더 꼽자면 모기였다. 한동안 모기에 지쳐 아예 모기를 소재로 단편소설을 쓴 적도 있다. 걸리버 여행기의 후이님에서 착안해 주인공 이름을 ‘후인’이라 지었다. 그는 이성적이고 지적인 존재라고 스스로를 믿지만, 삶 속에서는 늘 야후 같은 인간들을 마주한다.
그에게 사람들은 모기처럼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와 사소한 말로 상처를 남기고, 가려움처럼 잔뜩 마음을 긁어놓는 존재들. 심지어 매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던 어머니의 목소리마저 모기처럼 들릴 때가 있었다. 통화를 마치면 이유 없는 가려움이 남았다.
그래서인지 여름은 늘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계절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겨울은 내게 더 따뜻한 계절이 된다. 그저 겨울에는 모기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곤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여름보다 겨울에 모기에 더 잘 물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는 산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요즘 내가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는 그녀 때문이다. 그녀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는 참 많이 걸었다. 을지로3가에서 종로를 거쳐 혜화, 동대문, 광화문까지 이어지는 여름밤의 산책길. 하지만 어느 날, 내가 탈진해 쓰러질 뻔한 이후로 여름 산책은 우리 사이에서 금기처럼 사라졌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여름이 힘들었다. 우리 집안의 남자들은 유독 땀이 많았고, 나는 아버지의 권유로 겨드랑이 수술까지 받았다. 그 이후 땀은 엉뚱한 곳에서 나기 시작했다. 여름이면 손에서 땀을 흘렸고, 최근에는 얼굴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을 보고 놀랐다. 그 순간부터 여름 산책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대신 겨울이 가까워지면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맘 편히 놀러 다닐 수 있겠다.”
그 말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겨울이 오면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겨울 공기는 차갑지만, 그 속에서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이 또렷하게 깨어났다.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아 주머니 속에 넣으면, 우리는 서로에게 온기를 나누었다.
어릴 적 겨울은 무릎까지 빠질 만큼 큰 눈이 많이 와서 좋았다. 즐겁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겨울은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더 좋다. 고요한 계절 속에서 나는 추억을 되살리고, 사랑을 확인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아 내 주머니에 넣고 차가운 손이 따뜻해질 때까지 걸을 수 있는 계절이 겨울 뿐이기 때문에 나는 겨울이 좋았고, 좋고, 좋아질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겨울을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겨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