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43

너의 이름은 네가 만드는거야

by NaeilRnC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대부분은 누군가가 붙여준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스스로 이름을 붙인다. 내가 나를 “이라또”라고 부르는 것처럼. 자기가 붙인 이름에는 의지가 들어간다. 방향이 들어간다. 최소한 “나는 이렇게 불리겠다”는 선언이 들어간다.


오늘의 주제는 “너의 이름은”이다.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건 내게 주어진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부르는가다. 사원증에 적힌 이름이 아니라, 회의실에서 굴러다니는 이름. 단톡방에서 은근히 통하는 이름. 뒤에서 툭 던지는 그 이름.


내가 최근에 알게 된 ‘그놈’은 “쓰레기”와 유사한 형태의 이름으로 불린다. 그런데 그 별명은 단순한 욕이 아니다. 조직이 한 사람을 요약하고, 낙인찍고, 다루는 방식이다. 욕이 아니라 처분이다. 조직이 내리는 비공식 판결문이다.


조직에서 사람은 보통 이름보다 “과장”, “본부장” 같은 직급이나 직책으로 불린다. 그 호명은 그 사람의 책임의 수준이 된다. 직급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이어야 한다. 그런데 과장이라는 직급을 가진 어떤 이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쓰레기" 취급을 받고, 내게는 “그놈”으로 불린다. 여기서부터가 핵심이다.

“과장님”이 아니라 “그놈”이 되는 사람은 대개 한 가지를 한다. 직급을 책임으로 쓰지 않고 무기로 쓴다.


그놈은 말투도 싸가지가 없다. 하지만 그건 솔직히 부록이다. 결정적인 건 오늘 알게 됐다. 그놈은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 절대 지가 하지 않는다. 나이도 상관없다. 직급이 낮으면 무조건 지시한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고, “요청”이 아니라 “하대”다. 솔선수범이 아니라 직급을 이용하는 깡패다.


여기서 이름이 갈린다.
“과장”은 직함이고, “그놈”은 판결이다.
직함은 업무를 말하지만, 별명은 존재를 말한다.
그리고 조직은 결국 존재를 더 오래 기억한다.


고프만(Erving Goffman)이 말한 낙인(stigma)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낙인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이 그 사람을 어떻게 취급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놈”은 직급을 박탈하는 호칭이다. “과장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에게는 역할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놈”이라고 부르는 순간부터는 역할이 아니라 취급만 남는다. 사람들은 그를 상사로 대하지 않는다. 위험물로 취급한다. ‘관리 대상’이 아니라 ‘회피 대상’이 된다.


그놈이 왜 그렇게 불리게 됐는지, 사람들은 보통 “성향이 안 맞아서”라고 뭉개고 넘어간다. 하지만 이런 경우 ‘성향’은 대부분 “규범 위반”의 다른 말이다. 조직에는 암묵적 규칙이 있다. 직급이 높아도 기본은 지킨다는 규칙. 지시를 할수록 더 책임진다는 규칙. 남에게 일을 시킬수록 내가 먼저 움직인다는 규칙. 최소한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한다는 규칙.


그놈은 그 규칙을 깨는 게 아니라, 아예 없는 것처럼 산다. 자기는 손 하나 안 대고 남을 움직이려 한다.
직급 아래는 사람이라기보다 부품처럼 쓴다. 그리고 그걸 “관리”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난 경험주의자라 내가 경험하지 않으면 잘 안 믿기도 하지만 누군지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사람한테 렌즈를 적용하는 것도 딱히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그의 행동은 "딱" 사람들이 싫어할만한 행동이다. 그는 일부러 그러는것 같지 않았다. 마치 습관처럼,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쌓이는 불쾌감이 그를 "쓰레기"로 만든다.


셰리프(Muzafer Sherif)가 말한 준거점(reference points)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처음엔 다들 불편하다. 그런데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애매한 불쾌감이 쌓인다. 그게 반복되면 어느 순간 기준이 생긴다.

“저건 선을 넘는 행동이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저건 직급을 이용하는 짓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반복될수록, 취향이 아니라 규범이 된다. 그때부터 별명은 자동으로 굳는다.


그 다음은 애쉬(Solomon E. Asch)가 말한 동조(conformity)다. 별명이 퍼지는 속도는 의외로 빠르다.

왜냐하면 별명은 정보가 아니라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놈”이라고 부르면, 주변은 그 말에 동조하면서 서로를 확인한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네.” 이 확인이 집단을 단단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놈을 바깥으로 밀어낸다.

집단은 한 사람을 희생시켜 내부의 질서를 보존한다. 별명은 그 메커니즘의 언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건 귀인(attribution)의 종착지다.

그놈이 한 번 일을 떠넘기면 “그날만 그런가?”가 아니라 “원래 저런 놈”이 된다.

두 번이면 “확실한 놈”이 된다. 세 번이면 별명이 된다.

그리고 별명이 된 순간부터는, 그놈이 뭘 해도 그 별명은 이긴다.

말은 해명인데, 별명은 판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의 이름은 네가 만든 거야!”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놈은 스스로를 과장으로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를 깡패처럼 쓰는 과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직급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인데, 그놈은 책임을 지우고 권한만 남겼다.
그 순간부터 직급은 직함이 아니라 폭력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 문장을 반쯤은 되돌린다. 별명은 혼자 만들 수 없다.

누군가가 부르고, 누군가가 웃고, 누군가가 침묵으로 동의해야 완성된다.

별명은 언제나 복수형이다. 그놈이 자초한 것도 맞지만, 조직도 그 이름을 통해 편해진다.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경계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그냥 한 단어로 정리하면 되니까.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이것이다. 이름은 호칭이 아니다. 이름은 처분이다.

이름은 “어떻게 대하겠다”는 합의다.


그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이 조직에서 구성원이 계속 바뀌더라도 그는 여전히 '과장'보다 "걔", "그놈", "쓰레기"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순수'하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은 폭력, 무의식적인 지시와 책임 떠넘기기. 그는 오랜기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의지박약이 아니라 '무지' 그 자체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의 이름은, 네가 만든 거야. 그리고 어떤 이름은, 한 번 붙으면 끝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