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44

사실은 게으름의 알리바이가 된다.

by NaeilRnC

10월 24일은 유엔의 날이고,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다. 하루 차이다. 너무 가깝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승인받은 역사와 책임져야 하는 역사가, 달력에서 딱 붙어 있다.

유엔의 날은 기분이 좋다. 외부가 인정해 준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독도의 날은 기분이 무겁다. 우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같은 ‘기념일’인데, 온도가 다르다. 전자는 체면을 세워주고, 후자는 부담을 요구한다.

그래서 유엔의 날에는 힘이 실리고, 독도의 날에는 맥이 빠진다. 나는 오늘 그 차이가 조금 섬뜩했다.

이 나라의 기억장치가 어디에 반응하는지, 너무 적나라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상대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습관’을 만든다.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편입 고시한 일을 근거로, 2005년 ‘다케시마의 날’을 만들었다. 이후 중앙정부 차원의 행사로 격상시키며 반복한다. 그들은 “원래 우리 땅”이라고 확신해서 주장하는 게 아니라, “우리 땅이 될 수 있다”라고 믿기 때문에 주장을 ‘루틴’으로 굳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반대다. 독도는 명백히 우리 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굳이 주장할 필요를 못 느낀다.
명백한 사실은 종종, 가장 게으른 이유가 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악은 선보다 더 열심히 노력한다”는 문장을 떠올렸다. 권선징악은 이야기 속에서만 작동하고, 현실은 습관의 전쟁에 가깝다.


영토는 특히 그렇다. 영토는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을 얼마나 반복해 남기느냐의 문제로도 뒤집힌다.

그래서 나는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을 만드는 방식이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기억을 생산하는 기술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기념일은 감정의 꽃이 아니라, 기억을 찍어내는 공장이다. 한 번의 주장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해마다 반복되면서 “원래 그런 것”으로 굳어진다. 이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개념이 있다. 바로 에릭 홉스봄이 말한 ‘발명된 전통’이다.


1. 에릭 홉스봄의 '발명된 전통' (The Invention of Tradition)

홉스봄(Eric J. Hobsbawm, 1983)은 전통이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 근대 국가가 국민적 통합이나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비교적 최근(주로 19~20세기)에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많다고 본다. 다시 말해 전통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설계된 것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기념일’은 단순한 축하가 아니다. 기억을 재생산하는 장치다. 한 번의 선언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원래 그런 것”을 만들어낸다.

즉, 독도 문제는 ‘누가 옳으냐’의 싸움이기보다, ‘누가 더 오래 남기느냐’의 싸움이 된다.


2. 마이클 빌릭의 '일상적 민족주의' (Banal Nationalism)

빌릭(Michael Billig, 1995)은 민족주의가 월드컵이나 전쟁 같은 거대 사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관공서의 국기, 화폐의 도안, 일기예보의 지도 같은 일상적 소품을 통해 끊임없이(Flagging) 환기된다고 보았다. 빌릭의 관점에서 무서운 건 '전쟁 때의 과열'이 아니라, '소품'이다.

독도가 '명백한 사실'이라는 확신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확신이 일상에서 제대로 환기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는 점점 현실감이 약해질 수 있다. 우리는 '독도는 우리 땅'을 믿고 쉬어버리지만, 상대는 '다케시마'를 매년 올린다. 여기서 체력 차이가 발생한다.


3.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소' (Lieux de mémoire)

프랑스의 역사가 피에르 노라(Pierre Nora,1989)는 근대화로 인해 '진정한 기억'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기억을 붙잡아두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박물관, 기념비, 아카이브, 기념일 등을 '기억의 장소'라고 불렀다.

노라가 말하는 '기억의 장소'는 감상용 개념이 아니다.

"기억이 사라질수록 인간은 기억을 붙잡기 위해 장소, 기념, 아카이브, 의례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독도는 지리적 공간을 넘어 '기억의 인프라(시스템)'로 구축해야 한다. 사실(Fact)은 제도가 아니다.

그리고 '독도'는 우리에게 기억이지만 아직 시스템이 아니다. 이 상태가 오래가면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남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4. 해럴드 라스웰의 '선전' (Propaganda)

라스웰(Harold D. Lasswell, 1927)은 선전을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상징(Symbols)의 조작을 통한 집단적 태도의 관리"로 정의했다. 선전은 '의미 있는 상징'의 조작을 통해 집단의 태도를 관리한다. 이를 독도에 대입하면 그들의 날은 '한 번의 도발'이 아니라 상징을 정기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상징이 반복 공급되면 사람들의 태도는 "사실판단"이 아니라 "익숙함"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건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작용한다.


5. 맥콤스와 쇼의 '의제설정' (Agenda-Setting)

맥콤스와 쇼(Maxwell McCombs & Donald Shaw, 1972)는 매체가 대중에게 "무엇을 생각할지(What to think)"를 강요하기는 어렵지만, "무엇에 대해 생각할지(What to think about)"를 정하는 데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했다. 독도도 똑같다. 국민의 확신은 이미 많지만, 문제는 의제의 지속성이다. 독도가 1년에 하루만 떠오르면, 세계에서도 하루짜리 이슈가 된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가 매년 의제를 올리면, 세계는 "그 이슈가 계속 존재한다"라고 학습한다. 그래서 영토는 "진실"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영토는 계속 떠올리게 만드는 힘으로 지켜진다.


우리는 독도를 ‘영토’로 알고 있지만, 운영에서는 ‘기념물처럼’ 다룬다.

헌법은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말한다. 국가의 독립과 영토 보전은 국가의 책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의 행동을 보면 독도는 종종 ‘영토’가 아니라 ‘기념물’처럼 취급된다. 보호는 하는데, 주장에 익숙하지 않다. 보존은 하는데, 세계에 말하는 데는 어색하다.

그래서 우리는 넷플릭스 자막에 독도가 ‘독도’로 표기되면 안도한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안도감이 우리의 노력 대신이 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안도는 감정이고, 감정은 시스템이 아니다.

우리가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결국 문서였고 기록이었고 제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문서는 있는데 제도가 약하다. 제도가 약하면 예산도 약하고, 예산이 약하면 반복도 약해진다.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의 기념일에 발끈하고, 누군가의 표기에 안도한다. 반응은 있지만, 루틴은 없다.


결론: 사실을 사실로 남겨두려면, 국가의 반복이 필요하다

독도는 사실이지만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을 사실로 남겨두려면 제도가 필요하다.
기억을 기억으로 지키려면 반복이 필요하다. 그리고 반복은 국가의 몫이다.

민간에서 독도의 날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법정기념일을 망설인다면, 그건 이유가 아니라 핑계다.

제도를 만들면 된다. 제도를 만들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 “우리 땅이니까”라는 사실 위에서 쉬어버릴 것이다.


선과 악의 싸움에서 늘 답답한 쪽은 ‘선’이다. 악은 지독하게 열심히 노력한다. 그리고 권선징악은 책에만 나온다. 현실은 끈질기고, 오래 남는 놈이 승자다. 승자는 결국, 문장을 차지하고 지도를 차지하고 익숙함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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