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의미보다 끊기지 않음이 목적이 되는 인간
호모 스트리칸스는 streak(연속기록, 끊기지 않는 기록)에서 따온 말로, 무언가를 잘하기보다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을 더 중요한 목표로 삼고, 의미보다 연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인간을 뜻한다.
Homo streakans /ˈhoʊmoʊ ˈstriːkænz/ 는 그 인간형의 이름이다.
연속기록은 멋지다. 숫자는 성실을 증명해준다. 오늘도 했고, 어제도 했고, 그제도 했다는 사실은 말보다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을 믿는다. 기록은 배신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까.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기록이 삶을 돕지 않고, 삶을 지시하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
호모 스트리칸스는 “무엇을 했는가”보다 “끊기지 않았는가”를 먼저 확인한다. 그에게 오늘은 하루가 아니다. 오늘은 연속을 유지해야 하는 칸이다. 이 인간형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오늘은 퀄리티 말고, 업로드만 하자.”
“한 문장이라도 올리면 돼.”
“여기서 끊기면 너무 아깝잖아.”
여기서 ‘아깝다’는 건 성취가 아니다. 그가 아까워하는 건 내용이 아니라 연속의 번호다.
숫자는 실력이 아니라 ‘끊기지 않은 나’를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장면은 이렇다.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다. 처음엔 좋았다. 하루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고, 글이 쌓이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아무 얘기가 없다. 오늘은 쓰고 싶은 주제도 없고, 문장도 안 나온다.
여기서 보통 사람은 쉰다. 쉬고, 다시 쓰고, 밀리면 밀린 대로 둔다.
하지만 호모 스트리칸스는 쉬지 못한다. 쉬는 건 ‘휴식’이 아니라 ‘끊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쓰기보다 연속을 유지할 방법을 찾는다. 어제 쓴 글의 뒷이야기를 억지로 붙인다.
메모장에 남아 있던 문장 하나를 꺼내 늘린다. 이미 아는 이야기를 다시 배열한다. 짧은 문단 몇 개를 세워 “하나의 글”처럼 만든다. 그가 지키는 건 글의 의미가 아니라, 게시 버튼이다.
그는 결국 올린다. 정말 올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0이 싫어서 올린다. 그 순간 글은 표현이 아니라 증거가 된다. 이때부터 그의 연재는 조금 바뀐다. 쓰고 싶은 날에 쓰는 게 아니라, 끊기지 않기 위해 쓰게 된다.
연속을 지키려는 마음은 곧 “최소 행동”을 낳는다. 최소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기준이 된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됐지.”
“안 올리는 것보단 낫잖아.”
“연속만 유지하자.”
문제는 이 말들이 조금씩 의미를 갉아먹는다는 데 있다. 글이 쌓이는데, 마음이 쌓이지 않는다.
기록이 남는데, 기억이 남지 않는다. 호모 스트리칸스의 비극은 여기서 생긴다. 연속기록은 원래 삶을 돕기 위한 장치인데, 어느 순간부터 삶을 심사한다. 삶이 기록을 따라가고, 기록이 삶을 평가한다.
그래서 그는 묘하게 공허하다. 늘 이어왔는데, 남는 게 없다. 왜냐하면 연속은 의미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속은 그저 “끊기지 않음”일 뿐이다. 삶은 원래 끊긴다. 아픈 날이 있고, 무너지는 날이 있고, 아무것도 못 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까지 살려면, 기록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나는 이 인간유형을 따로 불러야 했다.
연속기록은 성실의 증거처럼 보이지만, 어떤 연속은 목적을 잃은 성실이다. 의미가 사라진 자리에는 숫자만 남고, 숫자가 남은 자리는 쉽게 강박이 된다.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연속은 무엇인가. 그 연속으로 당신의 삶이 제대로 쌓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