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쉬지 못해 다음 날을 먼저 사는 인간
호모 슬립리스는 sleepless (잠 못 이루는, 불면의)에서 따온 말로, 몸은 누워 있으면서도 마음은 멈추지 못해,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오늘 밤에 먼저 살아버리는 인간을 뜻한다.
Homo sleepless /ˈhoʊmoʊ ˈsliːpləs/ 는 그 인간형의 이름이다.
불면은 단순히 잠이 안 오는 상태가 아니다. 불면은 ‘쉼이 거부되는 상태’다.
눈을 감아도 하루가 끝나지 않는다. 불을 꺼도 생각은 꺼지지 않는다.
호모 슬립리스는 밤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밤에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밤에 내일을 산다. 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내일이 너무 빠르게 온다.”
“지금 자면, 내일이 바로 시작될 것 같다.”
“눈 감으면 월요일이 될 것 같아.”
그래서 그는 잠을 미룬다. 잠을 미룬다는 건, 결국 내일을 미루는 방식이다. 내일이 무섭거나, 내일이 벅차거나, 내일이 나를 다시 끌고 나갈 게 분명할 때 사람은 잠을 붙잡지 못한다.
전형적인 장면은 이렇다.
침대에 눕는다. 몸은 피곤해서 금방 꺼질 것 같다. 그런데 머리는 갑자기 선명해진다.
오늘 했던 말이 다시 돌아오고, 내일 해야 할 일이 줄을 서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실수가 미리 생긴다.
“내일 회의에서 이 질문 나오면 어떡하지.”
“그 자료를 아직 못 봤는데.”
“내일 아침에 그 사람을 마주치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지.”
호모 슬립리스는 미래를 상상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리허설한다. 잠자리에 누운 채로, 내일의 장면을 반복 재생한다. 그 반복은 준비처럼 보이지만, 실은 소모다. 그래서 그의 밤은 늘 이런 결말로 흐른다.
잠이 오지 않는 게 아니라, 잠이 오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이 남아 있는 것이다.
호모 슬립리스가 두려워하는 건 ‘잠’이 아니라 ‘전환’이다.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문턱.
그 문턱을 넘으면, 다시 책임이 시작된다. 그래서 그는 오늘을 붙잡는다. 오늘을 길게 늘인다.
폰을 보고, 영상을 틀고, 음악을 켜고, 가벼운 일을 일부러 만든다.
그건 휴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버티기다. 쉬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일이 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다.
불면의 진짜 비용은 피곤함이 아니다. 피곤함은 낮에 해결할 수 있다. 진짜 비용은 “다음 날을 먼저 산 밤”이 쌓이면서 현재가 점점 얇아진다는 데 있다. 내일을 미리 살면, 오늘은 아직 끝나지 못한다.
끝나지 못한 하루는 회복되지 못한다. 회복되지 못한 하루는 다시 불면을 부른다.
나는 이 인간유형을 따로 불러야 했다. 사람이 잠을 자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세상을 잠시 내려놓는 기술이다.
내일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끝내기 위해서 잠이 필요하다.
당신이 요즘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은 내일을 너무 일찍 살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