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55

정확히는 어제의 생각

by NaeilRnC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부담의 재배치다. 사랑은 쉬운데, 함께 사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결혼과 연애의 차이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공감하는 말은 이거다.

"연애는 집에서 함께 놀던 애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결혼은 그렇지 않다"


예전에는 이 말에 꽤 공감했었다. 함께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은 서로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나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상대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사랑은 늘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지킬 줄 아는 일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녀가 집에 다녀간 뒤의 방이 허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오면 나는 괜히 더 뭔가를 해주고 싶고, 곁에 꼭 붙어 있고 싶고, 그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었으면 싶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결혼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다시 헤어져야 한다. 그녀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는 늘 비슷한 감정이 남는다. 허전함이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그냥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같이 살면 안 되나.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마음은 이미 같이 있고 싶은데, 현실은 갑자기 다른 언어를 꺼내 든다.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집의 언어, 돈의 언어, 조건의 언어다. 함께 머물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 공간은 공짜가 아니다. 결국 결혼 이야기는 금세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가 된다.


얼마 전 점심을 먹다가 직원 둘에게 “결혼은 안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거의 자동반사처럼 말했다.

“하고 싶지만 아직 안정적인 공간이 없어서….”


그 말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나는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아마도 나도 모르게, 결혼을 하려면 남자가 어느 정도는 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아니, 왜 집을 꼭 남자가 해와야 돼요?”
“같이 살 건데 같이 해야죠.”


순간 조금 놀랐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오히려 그래서 더 놀랐다. 세상은 분명 조금씩 바뀌고 있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들었던 전혀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결혼을 앞둔 한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브랜드의 프로포즈 반지를 받지 못할까 봐 속상해하던 이야기였다. 그때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프로포즈용 반지를 따로 받고, 결혼반지를 또 받고, 집 이야기도 오가고, 예물 이야기도 오가고, 그러면 이 관계에서 대체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부터가 부담일까.


생각해 보면 연애는 둘이 좋아하면 시작할 수 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걷고, 같이 웃고, 아쉬우면 조금 더 붙어 있으면 된다. 그런데 결혼은 그렇지 않다. 집은 어떻게 할지, 돈은 어떻게 할지, 누가 더 많이 부담할지, 결혼 뒤의 생활은 어떻게 나눌지 같은 질문이 한꺼번에 따라붙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연애가 감정의 문제라면, 결혼은 주거와 규범의 문제구나.

좋아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는데, 그 마음만으로는 함께 살 수가 없다. 함께 있고 싶다는 감정은 너무 자연스러운데, 그것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것들을 증명해야 한다. 집이 있어야 하고,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도 정리되어야 한다. 사랑은 둘의 문제인데, 결혼은 갑자기 시장과 제도와 체면의 문제가 된다.


어쩌면 그래서 결혼이 점점 어려워지는 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랑을 현실로 바꾸는 과정이 너무 무겁고 복잡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은 아주 단순하다. 그런데 그 단순한 마음을 실현하는 일은 하나도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은 사랑의 다음 단계가 아니라, 사랑을 현실 속에 놓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조건들의 이름일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