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58

콩가루 집안의 네 아들.

by NaeilRnC

회사에는 꼭 그런 사람이 있다. 자기 일도 아닌데 누가 뭘 했는지 잘 안다.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일이 돌아가는지 이상하리만큼 빨리 안다. 그리고 그걸 꼭 위에 가져간다.

“혹시 몰라서 공유드립니다.”


듣는 사람은 안다. 저건 공유가 아니라 보고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자기 일도 아닌데 굳이 저걸 위에까지 가져갈 필요가 있나.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자존심이 낮아서 그런가?”


지금 이곳에서는 딱 ‘그놈’의 패턴이 이렇다. 은근슬쩍 다가와 누가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고, 장단을 맞춰주면서 그 사람의 업무를 습득하고, 거기에 자기 생각을 더 보태어 자기만의 스타일로 만들어 버린다. 문제는 담당자는 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윗선에서 “이게 좋겠어.” 라는 통보를 받고 멘붕에 빠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단순히 ‘그놈’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달쯤 이 조직을 보고 있으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건 한 사람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어떤 인간을 키우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을 오래 보면 결국 성과형 인간, 침묵형 인간, 참견형 인간, 정치형 인간 이렇게 네 종류로 나뉜다.

그리고 이런 인간 유형은 결국 회사가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들을 그 집안의 아들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의 핵심 내용은 콩가루 집안의 네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집안의 첫째 아들은 성과형이다. 첫째는 일을 잘한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방법을 찾고 결과를 만든다. 이 집안에서 가장 성실한 아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집에서는 이런 아들이 가장 조용하다.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들은 금방 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아들은 집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첫째가 화를 내는 때가 있다. 그때는 모두가 초긴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콩가루 집안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정말로 뛰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둘째 아들, 침묵형이다. 둘째도 일은 한다. 하지만 형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이 집안을 믿지 않는다. 예전에는 열심히 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일 잘하는 것과 인정받는 것이 꼭 연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한다. 집안 싸움에는 깊이 끼어들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자기 방에서 자기 할 일만 한다.


셋째 아들은 참견형이다. 이 녀석은 두 형들을 보고 자라서인지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 아들은 일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다. 정보를 통해 존재감을 만든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이 돌아가는지,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이런 것들을 빠르게 모은다. 그리고 그것을 집안 어른에게 가져간다. 집안 어른의 입장에서는 이 녀석이 가장 기특하다.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 1959)은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일상생활에서의 자아연출)에서 인간은 사회 속에서 자신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이도록 연출한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단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능해 보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일을 해결하는 대신, 상황을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한다. 셋째 아들은 바로 그 방식으로 살아간다.


넷째 아들은 정치형이다. 이 녀석은 꽤 흥미롭다. 이 녀석은 일을 읽지 않고 권력을 읽는다. 누가 이 집안에서 힘이 있는지, 누가 다음에 더 커질지, 누구 편에 서야 유리한지를 빠르게 파악한다.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자기 위치를 조정한다. 이 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아들은 종종 이 유형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생긴다. 왜 어떤 조직에서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어떤 조직에서는 참견하는 사람이 늘어날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조직은 항상 자신이 보상하는 인간을 생산한다.


성과를 보상하면 성과형 인간이 늘어난다. 보고를 보상하면 참견형 인간이 늘어난다. 권력 연결을 보상하면 정치형 인간이 늘어난다. 그래서 어떤 조직에서는 전문가가 자라고, 어떤 조직에서는 정보상이 자란다. 그리고 그 차이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보상의 방향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이제는 ‘그놈’이 자기 일도 아닌 걸 위에 보고해도 예전처럼 “쟤 왜 저래?”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아, 이 조직이 저런 인간을 키우고 있구나.


조직은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조직은 자신이 보상하는 인간을 만들어 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