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현상
집에서 늘 7시 40분쯤 출발한다. 어김없이 같은 길을 걸어 출근한 지도 어느덧 두 달째다.
지금까지 별일은 없었는데 오늘 아침, 골목길에서 차에 치일 뻔했다. 무서운 속도로 골목을 달리던 화물차가 내 앞에서 급정차했다. 순간 욕부터 나올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 오늘 뭔가 안 좋다.’
약 10분 뒤, 이번에는 시장 골목에서 우회전을 하던 자전거와 또 부딪칠 뻔했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걸었다면 오늘은 그대로 ‘산재-day’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쉬움보다는 아까 들었던 느낌이 더 강해졌다.
‘오늘 뭔가 나에게 직진해 올 것이다. 나는 참아야 한다.’
출근하자마자 어제의 회의록을 작성했다. 아… 사진을 좀 잘 찍어둘 걸. 쓸 만한 사진이 딱 한 장뿐이다.
그래도 술병은 안 찍혔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아침부터 하나 해결하고 나니 조금 여유가 생겨 지금은 몰래 일기를 쓰고 있다. 이제 4월 12일 전후까지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 아직 도장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라도 나의 자리는 바뀔 수 있다.
문제는 변수다. 일단 내일 행사부터 그렇다. 원래는 회사 소유의 다목적실을 섭외했고 공지도 이미 다 돌렸는데, 어제 담당자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다목적실은 이미 대여 상태였다는 것이다.
‘아니, 그걸 왜 이제 얘기하는 거야.’
억울함보다는 ‘아, X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역시 나의 촉은 틀리지 않았다. 아침부터 어제 사진 때문에 경리담당자에게 깨졌다. 회의 사진을 왜 식당에서 찍었냐는 것이 그녀가 나를 까는 이유였다.
아니, 애초에 회의가 없었고 식당에서 모임을 가진 건데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지?
그녀는 담당자가 이런 걸 왜 안 챙겼냐며 몰아붙였지만 그 일정이 애초에 우리가 짠 것도 아니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침부터 나를 잡는 걸 보니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미 두 번이나 전조현상을 겪었기 때문에 여기서 더 나가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똑바로 좀 하세요.”
아… 억울했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 월급은 ‘매값’이었기 때문이다. 담배 타임도 없이 이번에는 국장님의 업무가 시작됐다. 특강 관련 주제를 여섯 가지로 정리해서 임의로 강연 주제와 일정을 잡아 놓았는데 갑자기 직원들 앞에서 설명을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일 있을 설명회에서 대표이사의 인사말을 준비하고 특강 준비 관련 지시사항이 쏟아졌다. 국장님의 비가 쏟아지던 그 순간, 이번에는 경리담당자가 내 자리 앞에 와서 말했다.
지출을 할 때는 사전에 품의서를 작성해야 하고 이후에는 경의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나?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기억도 잘 안 난다. 아무튼 또 한 차례 뭔가를 쏟아내면서 내 옆에 딱 붙어 클릭질을 시켰다.
경리담당자 : “자, 한 번만 알려줄 거니까 똑바로 하세요.”
국장님 : “대리님, 아까 얘기한 부분… 아, 이따 얘기해요.”
팀장님 : “대리님, 아까 그 주제… 아…”
선임 : “대리님, 제가 어제 말씀드렸던 거…”
…
저기요. 님들. 저한테 왜 그러세요?
그때였다. 팀장님이 멀찌감치에서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뭐! 어쩌라구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