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라는 제도
나는 그동안 휴가나 연차를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다. 내가 연차를 쓸 때는, 일하다 지쳐 쓰러졌을 때가 거의 전부였다. 그게 아니면 그런 걸 써 볼 생각조차 못 할 만큼 늘 바쁜 회사에 다녔다.
그래서 어떤 회사에서는 내가 출근하지 않으면 '출장'이거나 '퇴사'한 줄 사람들이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안 나오면 안 나왔지, 절대 지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오후 반차를 사용했다. 사유는 피곤해서. 결재는 병원진료라고 썼지만, 사실 꼭 병원을 가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쉬고 싶었다. 그동안 다녔던 회사에서는 반차나 연차를 쓰려면 결재 전에 이유를 설명한 뒤 승인을 ‘득’해야만 가능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과는 ‘불가’였다.
바쁘니까 안 되고,
지금은 안 되고,
다음에 보자고 하고,
급한 일 끝나고 얘기하자고.
결국 제도는 있었지만 권리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반차는 분명 존재했지만, 쓸 수 있는 사람만 쓰는 무언가에 가까웠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점점 쉬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피곤하다고 말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잠깐 쉬겠다고 말하는 건 더 어려웠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는 갑자기 올린 “오후반차”가 그냥 승인되었다. 설명도 길게 하지 않았고, 굳이 납득을 시키려 애쓰지도 않았고, 내가 왜 피곤한지 구구절절 증명하지도 않았다. 그냥 승인.
신기할 따름이다. 신세계에 온 느낌이다. 나는 그동안 당연히 내가 받아도 되는 권리를 포기하고 살았는데, 여기서는 그 권리가 정말 권리처럼 처리되었다. 이게 원래 정상일 텐데 정상이라는 사실이 더 낯설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반차는 제도인데, 어떤 곳에서는 그 제도를 쓰는 사람이 미안해해야 한다.
쉬겠다고 말한 사람이 오히려 눈치를 보고, 허락을 구하고, 양해를 빌고,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쉬는 일조차 노동이 된다. 그래서 오늘의 반차는 단순히 반나절을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당연한 권리를 당연하지 않게 여기며 살아왔는지, 새삼 확인하는 시간에 더 가까웠다.
물론 반차 한 번 썼다고 갑자기 세상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적어도 오늘만큼은 쉬고 싶다고 말했을 때, 굳이 쓰러져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조금 고마웠다.
반차라는 제도는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나는 그걸 꽤 늦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