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래! 정말 이게 현실이야?
다른 바쁜 일들을 뒤로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내일 행사 준비를 했다.
의전을 위해 타임테이블을 만들었고, 교육도 해야 했기 때문에 교육자료도 만들고 있었다.
일정이 17시부터 시작이었기 때문에 저녁을 먹이기 위해 30명 이상 들어갈 수 있는 식당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18일 저녁 17시 40분. 내일 일정을 취소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뻘짓을 했다. 순간 욕이 나왔다. 다른 건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정작 나한테 이 뻘짓을 시킨 사람은 사과 한마디 없지?
사람들은 늘 말한다. “원래 이래.” 갑자기 바뀐 일정과 계획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척은 해준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건 결국 남의 일이다. 누구 하나 도와주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늘 오후에 한 민원인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열리지 않는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려댔고, 씩씩거리며 들어와 곧 그만둘 예정인 선임대리를 찾았다. 그분은 예전에 “내 집 앞”을 외치던 분이었다. 집 앞에 설치된 열주등이 고장 나서 한낮에도 어두워 무섭다고, 그래서 고쳐 달라고 하셨던 그분이 오늘 다시 등판한 것이다.
그분을 보면서 참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 입장에서는 짜증도 났겠지. 내가 불편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했는데 핑퐁을 당하다 결국 우리 쪽으로 넘어왔고, 담당자도 있었으니 금방 뭔가 고쳐질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 달이 넘어도 고쳐지지 않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행정도, 일도, 실무도 결과만 본다는 점이다. 오늘의 행사도 그랬다. 누군가는 하루 종일 타임테이블을 짜고, 자료를 만들고, 식당을 찾고, 순서를 정리했다. 하지만 취소 통보는 단 한마디로 끝났다. 민원도 비슷하다. 결과만 보면 단순해 보인다.
“왜 아직 안 고쳐졌냐.”
“왜 횡단보도 하나 못 그리냐.”
“왜 금방 안 되느냐.”
하지만 그 사이에는 늘 설명되지 않는 과정과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다. 예전에 집 앞에 횡단보도를 만들어 달라는 민원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분의 핵심은 “그 흰 줄 몇 개 그리는 게 뭐가 그리 어려워서 몇 년째 요구를 들어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횡단보도는 관할 행정기관이 마음대로 그릴 수 없다. 관할 경찰서와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야 하고, 그 회의에서 승인되지 않으면 시장은커녕 시장 할아버지가 와도 횡단보도를 그려줄 수 없다.
물론 일반인들은 이런 구조를 모를 수 있다. 모르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행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래야 쓸데없는 오해가 줄고, 엉뚱한 사람을 붙잡고 화를 내는 일도 줄어든다.
예전에 지역개발 연구용역을 할 때마다 내가 줄기차게 강조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주민교육이었다.
주민 참여도 중요하고, 주민 의견도 중요하다. 하지만 주민이 행정의 작동 방식을 전혀 모른 채 결과만 요구하면 그 피로는 결국 제일 아래 실무자에게 몰린다. 오늘 내가 하루 종일 허무했던 것도 결국 비슷하다.
누군가는 하루를 다 써서 준비했고, 누군가는 하루를 다 써서 설명했고, 누군가는 하루를 다 써서 맞춰 봤다.
그런데 취소는 너무 쉽게 통보되었고, 민원은 너무 쉽게 밀려왔고,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했다.
“원래 이래.”
정말 이게 현실인가. 현실이라면 왜 늘 중간에 있는 사람만 과정까지 다 떠안고 결과까지 욕을 먹어야 하는가.
오늘 나는 행사를 준비하다가 허무했고, 민원을 보다가 피로했고, 사람들의 익숙한 말투를 들으며 더 지쳤다.
원래 이렇다는 말은 대개 이 구조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그래서 더 싫다.
아, 이래서 그 직원이 아침부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구나. 점심때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곧 그만둘 생각이라는 것. 그리고 이번 채용공고에서 성공적인 진급 후 얼마 후에 나갈 생각이라는 것.
듣고 보니 그 표정이 이해됐다.
진급이 축하가 아니라 탈출 직전의 경유지처럼 느껴지는 조직이라면 사람의 얼굴이 맑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대리님, 혹시 그만두실 예정이면 저한테 귀띔 좀 해주세요. 제가 먼저 그만두게요.”
순간 웃어야 할지, 같이 한숨을 쉬어야 할지 몰랐다.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조금도 농담 같지 않았다.
그리고 난 오늘 남아서 못 했던 일을 끄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