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공연
어제 BTS가 광화문에서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고 한다. 사고 없이 끝났다는 점은 분명 다행이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에도 묘하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이 공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공연이었을까.
보도에 따르면 이번 공연에는 경찰 6700여 명, 공무원·공무직 2000여 명, 공공기관 인력 1300여 명, 소방 800여 명 등 공공부문에서만 1만 명이 넘는 인력이 투입됐다. 민간 경비 인력보다 더 많은 숫자다.
물론 대규모 행사에서 안전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건 당연하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 사고가 나면, 결국 책임은 공공이 지게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공연은 표면적으로는 ‘무료 공연’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특정 기업의 브랜드와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운 행사이기도 했다. 무료라는 말 뒤에는 늘 다른 수익 구조가 따라온다. 홍보 효과, 콘텐츠 확장, 주가 상승, 후속 사업.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왜 그 비용과 노동의 상당 부분을 국가와 시민이 떠안아야 하는가.
경찰 인건비만 수억 원에서 1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공무원 시간외수당, 소방 인력, 장비 운영 비용까지 포함하면 실제 투입된 공공 예산은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 시간 동안, 그 인력들은 한곳에 묶여 있었다. 그 말은 곧, 다른 곳의 치안과 행정 대응은 상대적으로 비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건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같은 주말에도 전국은 결코 한가하지 않았다. 대전에서는 자동차부품 공장 화재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고, 수백 명의 대응 인력과 장비가 투입됐다. 물론 “광화문 공연 때문에 특정 사고 대응에 실패했다”는 직접적인 사례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공연 이전부터 다른 지역 대응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공공의 자원은 원래 이렇게 작동한다. 한 곳에 집중되면, 다른 곳은 얇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참 편리하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안전을 위한 공공의 개입과 민간 기업의 이벤트를 위해 공공 자원이 사실상 보조금처럼 투입되는 일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공권력은 더 이상 모두의 것이 아니다. 이름은 공공이지만, 실제로는 더 큰 자본과 더 큰 주목도를 가진 주체에게 먼저 열리는 자원이 된다. 그래서 더 노골적으로 묻고 싶다.
하이브는 이 공연을 통해 무엇을 얻었고, 공공은 무엇을 얻었는가.
하이브는 브랜드와 화제성을 얻었고, 넷플릭스는 글로벌 콘텐츠를 얻었고, 팬들은 추억을 얻었다.
그렇다면 국가와 시민은 무엇을 얻었는가.
“한류의 위상”이라는 말로 이 모든 비용과 노동을 설명할 수 있는가. 그 답이 명확하지 않다면, 이건 문화행사를 지원한 것이 아니라 공공자원이 민간에 편향적으로 배분된 장면에 가깝다.
나는 BTS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공연을 즐긴 사람들을 탓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묻고 싶다.
이 공연은 누구를 위해 열렸고, 그 비용은 누가 감당했는가.
그리고 다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또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할 것인가.
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너무 쉽게 허락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