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에서 정치 언급의 딜레마

정치를 말하는 순간, 학문은 프레임이 된다.

by NaeilRnC

배경 : 나는 석사까지 사회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행정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학문적으로 보면 이 둘은 전혀 다른 세계다. 사회학은 세상의 ‘구조’를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행정학은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해석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나는 세상을 더 넓게 보고, 더 촘촘히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상하게,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배움이 내 안에 답답함을 남겼다. 이 두 학문이 정치 앞에서 동시에 보이는 어떤 ‘어색한 조심스러움’ 때문이다.

262397_178057_1542.jpg 출처 : 바람’은 있는데 ‘바람’이 안 분다? 제3 지대 딜레마(2023.04.28 18:23)


□ 바람이 불면 학문은 몸을 웅크린다.

정치는 바람에 가깝다. 예고 없이 방향을 틀고, 갑자기 세게 불어오고, 어느 날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멈추기도 한다. 행정학은 그 바람을 등지고 선다. 정치가 흔들리면 행정의 ‘전문성’이 흔들리고, 행정이 흔들리면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의심받는다. 그래서 행정학은 정치 앞에서 말을 줄인다. 마치 바람이 닿지 않는 가장 조용한 그늘을 찾는 것처럼.


사회학은 겉보기엔 바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학문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치를 언급하는 순간 분석은 ‘입장’으로 읽히고, 해석은 ‘편 가르기’처럼 들린다. 그래서 사회학도 어느 순간 말을 접는다. 두 학문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지만, 정치 앞에서는 모두 조용해진다.


□ 침묵의 방식은 다르지만, 목적은 비슷하다.

행정학의 침묵은 ‘돌’ 같다. 겉은 매끄럽지만, 작은 흔들림에도 금이 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더 단단해진 침묵이다. 사회학의 침묵은 ‘물’ 같다. 겉은 흐르고 깊어 보이지만, 정치라는 돌멩이가 떨어지는 순간 파문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알고 있다. 그래서 미리 잔잔해진다.


모양은 다르지만, 두 침묵의 목적은 같다.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 위해. 정치를 언급하는 순간 학문은 학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편’이 되기 때문이다.


□ 그러나 현장은 그 침묵의 대가를 치른다.

나는 민간 연구자로서, 바람을 몸으로 맞는 사람이다. 그리고 현장의 바람은 학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거칠고, 훨씬 솔직하다. 단체장이 바뀌면 정책은 하루아침에 뒤집히고, 선거철이 되면 계획은 이유 없이 가속되거나 멈춘다. 정치의 바람은 현장을 흔드는 데 망설임이 없다.


학문이 정치의 동선을 설명하지 않을 때, 그 공백을 현장이 통째로 감당한다. 정책은 흔들리고, 주민은 혼란스러워지고, 연구자는 밤새 보고서를 다시 쓰면서 그 공백을 메운다. 그럼에도 학문은 조용하다.

“그건 정치적 사안이니까요.” 이 한 문장으로 모든 흔들림은 설명되지 않은 채 남겨진다.


□ 말하지 않는 이유,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

행정학은 전문성을 지키고 싶어서 조심한다. 사회학은 해석의 자유를 잃고 싶지 않아서 멈춘다. 둘 다 이해할 수 있다. 어느 학문이든 자신의 언어가 정치적 무기로 변질되는 순간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거다. 그렇게 조심하고, 그렇게 침묵할수록 정치는 더 마음껏 움직인다. 학문이 멈춰 있는 동안 정치는 움직이고, 그 움직임의 결과는 결국 우리의 삶을 바꾼다. 학문은 바람을 피하지만 그 바람은 어차피 누군가에게 닿는다. 그 누군가는 언제나 현장이다.


침묵은 중립처럼 보이지만, 결국 선택이다. 정치 앞에서 학문이 침묵할 때, 그 침묵은 고상해 보일 수도 있다. 중립처럼 보이고, 신중처럼 보이고, 균형을 지키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침묵 때문에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생기고 책임지지 않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현장은 불필요한 흔들림을 감당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학문의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책임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정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침묵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침묵으로 인해 흔들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적어도 그 사실만큼은 학문이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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