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익은 배제하고, 책임은 남겨야 한다.
요즘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공정에는 늘 내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나는 '이익'을 말한다.
내가 불리하면 불공정이고, 내가 유리하면 침묵한다. 같은 기준인데도 위치가 바뀌면 판단이 바뀐다.
그렇게 공정은 원칙이 아니라 입장으로 변한다. 그리고 공정이 입장이 되는 순간, 태도도 함께 무너진다.
그래서 요즘은 fair에서 i가 빠지면 far가 된다.
존 롤스(John Rawls, 1971)는 『A Theory of Justice』(정의론)에서 정의를 공정성의 문제로 설명한다.
“Justice is fairness.”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상태, 즉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뒤에서 규칙을 만든다면 모두에게 공정한 기준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공정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와 무관하게 유지되는 기준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위치를 알고 말한다.
내가 불리한 자리에서는 원칙을 요구하고, 내가 유리한 자리에서는 상황을 말한다.
그래서 공정은 이렇게 바뀐다. 원칙에서 조건으로, 기준에서 입장으로. 이 지점에서 fair는 이미 far가 된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2009)은 『The Idea of Justice』(정의의 아이디어)에서 완벽한 정의보다 실제로 작동하는 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공정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지 속에서 드러난다고 본다.
이 말은 더 냉정하다. 공정은 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공정을 주장하고, 어떤 상황에서 침묵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생각하는 공정의 실체가 드러난다.
내가 손해 볼 때만 공정을 말하면, 그건 기준이 아니다. 내가 이익 볼 때 공정을 지키지 않으면, 그건 신념이 아니다. 공정은 주장하는 순간이 아니라 포기하는 순간에 증명된다. 이게 공정의 본질이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간다. 공정은 더 많이 말해지지만, 더 적게 지켜진다.
사람들은 공정을 요구하지만, 자기에게 적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공정은 점점 멀어진다.
fair에서 i가 빠지면 far가 되듯이, 공정에서 책임지는 나를 빼는 순간 그 공정은 남의 이야기가 된다.
결국 문제는 단순하다. 공정을 말할 때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가. 이 질문을 피하는 순간 공정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런 공정은 언제나 멀리 있다. 그래서 내가 빠진 공정은, 언제나 far다.